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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10.24 14:11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돈과 계약, 자비를 둘러싼 재판극이다.상인 안토니오는 친구의 구혼을 돕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내주겠다는 조항에 서명한다.배가 침몰해 빚을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계약대로 살을 요구하며 법정에 선다. 그러나 법정은 계약보다 자비를 택했다.판사로 변장한 포샤는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살만 베라”는 논리로 샤일록의 요구를 무력화시켰다. 정의는 세워졌지만 계약의 신뢰는 무너졌다.400년 전 이야기지만, 도덕의 잣대가 법의 결론을 흔드는 장면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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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9.29 16:55
"카카오톡은 유료화할 계획이 전혀 없다. 카카오톡에 광고 넣을 공간도 없고, 쿨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다."2010년 출시 당시 카카오가 남긴 이 약속이 지금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5년간 단순함과 편리함으로 승부해온 메신저가 갑작스럽게 SNS로 변신을 시도하면서다. 앱스토어 평점은 2.5점까지 추락했고, 리뷰란에는 분노한 이용자들의 "역대 최악 업데이트"라는 혹평이 끝없이 쏟아진다.카카오는 왜 이런 거센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화를 밀어붙였을까. 답은 체류 시간과 수익 모델이다. 카카오톡의 월간 사용자 수(MAU)는 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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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9.22 15:18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툭하면 사상 최대 실적을 빌미로 금융권을 겨냥한 청구서가 줄을 잇고 있다. 정부는 '상생금융'이라고 쓰지만 금융권은 '청구서'라고 읽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금융당국이 벌어들인 수익은 사회적 약자 등을 위해 쓰이는 공공성을 띠기도 한다. 특히 서민금융안정기금, 배드뱅크 설립, 교육세 인상, 국민성장펀드 출연, 소상공인 채무 감면 등 공공성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정치적 의미도 담겨져 보인다.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의 '이자장사', '잔인한 금융' 등의 발언이다. 은행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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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6.05 15:21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재명 대통령이 공식 임기에 들어섰다.서울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국정 행보에 시동이 걸렸다. 언론은 총리 인선과 개각 방향에 주목했고, 정치권은 협치 여부와 여야 간 신경전에 무게를 뒀다.하지만 산업부에서 몸담아온 나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공약대로만 해줘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대선 기간 내내 이재명 대통령은 ‘개혁’보다 ‘민생’을 앞세웠다. 말은 쉬워도, 민생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생의 첫 단추는 어디서 꿰어야 할까.바로 석유화학이다. 정치권은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첨단산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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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5.23 16:18
100조원.올해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나란히 공약으로 내건 인공지능(AI) 산업 투자 규모다. 두 후보 모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데이터센터 건설, 청년 인재 양성 등 구체적인 계획을 공약집에 수 줄씩 늘어놓으며 'AI 세계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교해 보이는 청사진 속에 정작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있다. 전력, 즉 이 거대한 산업을 실제로 움직일 '동력'이다.AI 산업은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전기 에너지를 소모한다.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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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5.16 14:43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도입된 규제를 없애고 자율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시장은 일부 대형 거래소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16일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거래소의 24시간 거래량 점유율은 업비트 67.5%, 빗썸 29.3%, 코인원 2.4%, 코빗 0.6%, 고팍스 0.05% 순이다. 이미 두 거래소가 시장을 장악한 독과점 구조에서 규제를 푸는 것이 자유 경쟁이 아닌, ‘승자 독식’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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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5.02 14:54
최근 한국의 대표 통신사 SK텔레콤(SKT)이 자사의 고객 정보가 외부 해킹 공격으로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해킹 사고를 넘어 기업의 책임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정보 유출은 이제 단순한 보안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로 기업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다.유출된 정보에는 고객의 이름, 연락처, 주소, 결제 정보 등 민감한 개인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파장은 상상 이상이다. SKT는 그동안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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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27 13:54
'아, 이 사람?'취재 중 발견한 낯선 이름. 그리고 함께 취재했던 언론인들 입에서 나온 짧은 탄식과 갸우뚱. 기자는 제보를 받고 영암군 수리시설 개보수 공사 관련 특허공법 선정 과정이 과연 적절했는지, 혹시 입찰 과정에 업체들 간 사전 담합이 있었던 것 아니었는지 취재 중이었다. 입찰에 참여한 '가족 회사' 추정 업체들의 대표와 이사진들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영암군 모 인사가 오버랩됐다. 민선 8기 우승희 군정 출범과 함께 입성한 정무라인 인사와 성이 같고 가운데 '상명자(上名字)'도 같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정무라인 '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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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25 16:26
한때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에 달했다. 획기적인 혈액 검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기극을 펼쳤던 기업이다.'제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우던 테라노스의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1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는데, 뻔뻔하게도 지난 2월 항소 법원에 재심리를 요청했다.다행히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지만, 피 몇 방울로 250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그녀의 모습은 피해자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악몽처럼 남아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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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22 13:01
전북특별자치도가 감사원 지적 사항이기도 했던 ‘공무원 파견’ 관련 정보를 비공개 처리로 일관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관련기사 : 전북특별자치도, 어이없는 정보공개 행정 논란공무원 파견은 형태에 따라 별도 파견과 비별도 파견으로 구분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비별도 파견이다.별도 파견은 결원 보충이 되는 반면, 비별도 파견의 경우 정원 외로 분류돼 결원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예를 들어 비별도 파견자가 20명일 경우, 20명의 충원 없이 나머지 인력이 할당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통상적으로 비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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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18 16:04
“은행보다 이율이 낮은데 누가 가입해요?”며칠 전, 미팅을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있던 중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대화가 귀에 꽂혔다. 분홍색 정장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 설계사가 점퍼 차림의 40대 중후반쯤 되어보이는 남성에게 보험 상품을 설명 중이었다.앳된 얼굴로 친절한 설명을 이어가던 설계사와 달리, 남성은 시종일관 고개를 갸웃거리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저는 십수 년간 기업 재무팀에서 일했어요. 이런 건 말이 안 되죠”라는 말도 들려왔다.그의 말에 설계사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 상품, 연금 전환도 가능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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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11 09:43
"곪을대로 곪은 게 터졌다."최근 술자리에서 연일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얘기가 나오자 한 취재원이 한 말이다. 그는 "백 대표는 거의 신격화돼 있다. 가맹점주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카페에 가면 백종원은 거의 교주다"며 "한번 가맹점주가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고개를 저었다. 더본코리아의 가맹 브랜드를 개점한 후 매출이 떨어지면 본사 차원에서 다른 브랜드로 간판을 바꿔다는데, 이 과정에서 점주는 결국 누적되는 투자금에 묶여 계약 해지도 어렵다는 것이다.일부 가맹점주들은 가맹계약을 할 때 더본코리아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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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4.07 10:13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사업 성공을 위해 골깊은 갈등 관계를 극복하고 힘을 모으기로 했던 두 조선사가 방사청의 미온적인 개입에 또 다시 대립각을 세워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앞서 해군의 미래 전력과 방산시장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며 사업 협력을 약속했다. 10조원 규모의 호주 수상함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양사가 서로 기소했던 고발을 취하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원팀 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하지만 약 8조원 규모의 계약 체결 시간이 다가오자 두 조선사는 한 치의 양보없는 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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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3.28 06:00
오랜 진통 끝에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또 다른 난관을 마주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도 개혁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간에는 어렵사리 합의가 이뤄졌을지 몰라도, 세대 간 합의에는 실패한 모양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1.5%에서 34%로 조정하는 것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고갈 위기에 처한 연금 재정을 조금이라도 늦추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개편 방식을 두고 형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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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3.24 11:17
비은행 강화를 위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보험사 인수가 목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금융당국이 자격 미달의 우리금융에 ‘특혜’를 베풀지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미흡으로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으로 한 단계 하락한 우리금융에 조건부 승인 형태로 동양·ABL생명 인수를 승인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이 같은 전망의 배경에는 지난 19일 “우리금융그룹과 보험산업 발전도 고려하겠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유동적인 상황에 대비해 조건부 승인의 가능성을 열어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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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3.14 10:51
현재 게임업계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고전적인 서사처럼 반복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침체된 경기 속에서 신규 채용의 기회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나이 든 임원들뿐이다.실패를 두려워 하는 느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시도는 점점 사라지고 결국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낡고 익숙한 게임들뿐이다.문제는 명확하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한 채로 이미 한 번 보았던 게임들만 반복되며 시장은 더욱 단조롭게 변해간다. 젊은 인재가 부족한 게임업계는 계속해서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게임산업은 수 많은 실패와 도전끝에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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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2025.03.07 15:49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는 '양초업자의 탄원서'로 정부를 풍자해 명성을 얻었다. 이 탄원서는 19세기 프랑스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취지로 작성됐다. 양초업자가 태양의 존재를 '불공정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집집마다 두꺼운 커튼을 치도록 하는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작금의 다이소 건강기능식품 사태를 둘러싼 약사들의 집단 행동은 "경쟁자를 없애 달라"며 떼를 쓰는 양초업자를 연상케 한다. 물론 핑계는 그럴싸하다. 성분을 따져보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저가형 건기식으로 인해 약사들이 폭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