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팀. 주요 대기업들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깐부치킨이라는 친근한 장소에서 재계 수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러브샷’을 나누는 장면은 몇 년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만남은 우연한 친교가 아니라 수개월간의 외교·산업 협상의 결실이었다. 민간과 국가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판 ‘민간외교’의 한 장면이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는 산업 전반의 인공지능(AI) 전환을 촉진하는 핵심 촉매다. 깐부치킨 회동 다음날 젠슨 황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CEO 서밋에서 아시아에 26만장 이상의 AI 칩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에는 블랙웰 GPU 5만 개가 배정됐다. 블랙웰은 자율주행부터 제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공장 자동화에 이르기까지 ‘AI 팩토리’ 구축의 핵심 연산력을 책임진다. 고성능 GPU의 대량 확보는 돌발 상황 대응 능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원가 경쟁력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은 차량 내 AI, 자율주행, 생산 효율화, 로보틱스를 하나의 연결된 생태계로 엮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량이 스스로 인지·판단·제어하는 딥러닝 모델을 구축해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수준의 자율주행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더불어 정의선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발판 삼아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기술이 제조 공정 전반에 적용되면 자동차 생산 라인의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져 비용 절감과 소비자 편익으로 직결될 전망이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이런 미래형 공장 구현을 앞당기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과의 이면에는 위험도 함께했다. 지난 3월 정의선 회장이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직후, 조지아주 HL-GA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체포·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HL-GA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대형 합작공장으로, 한미 경제 협력의 상징적 프로젝트였다. 이 사건은 프로젝트의 상징성에 치명타를 입히며 한국 기업들의 현지 경영 리스크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정의선 회장은 즉각 대응했다. 두 달 뒤 뉴욕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향후 5년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 내 신뢰 회복과 수요 둔화·관세 리스크에 대한 대응 의지를 분명히 했다. 투자 규모를 늘리고 비자 제도 개선 필요성을 공개 제기하는 등 외교·산업·정치적 채널을 통해 복합적 문제를 풀어가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의 메시지가 전달되자 사태는 곧 지역 정치의 영역으로 번졌다. 조지아주 정부는 현지 일자리 창출과 투자 유치의 핵심 파트너로서 상황 수습에 힘썼고,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신뢰 회복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섰다. 켐프 주지사는 체포·구금 사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을 통해 기술자 단기비자 문제 등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건의하는 등 현지 사정과 정치적 동력까지 끌어들여 문제 해결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정의선 회장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통해 GPU 확보 등 기술적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AI 팩토리’가 현실화되면 비자 문제와 관세 부담에서도 상대적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자동차 미 관세율 15% 까지 얻어냈다.
정의선 회장은 기술 확보와 외교적 설득을 동시에 추진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