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사업 성공을 위해 골깊은 갈등 관계를 극복하고 힘을 모으기로 했던 두 조선사가 방사청의 미온적인 개입에 또 다시 대립각을 세워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앞서 해군의 미래 전력과 방산시장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며 사업 협력을 약속했다. 10조원 규모의 호주 수상함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양사가 서로 기소했던 고발을 취하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원팀 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약 8조원 규모의 계약 체결 시간이 다가오자 두 조선사는 한 치의 양보없는 주장을 다시 내세웠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방식대로 KDDX사업은 수의계약 형태를, 한화오션은 군사기밀 관련 사고를 일으킨 HD현대중공업의 과거 전력을 따지며 공동설계를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서로의 주장이 맞는 듯 하나 정치적으로는 ‘선점’과 ‘견제’가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갈등 해결을 위해 방위사업청은 공동설계, 건조라는 중재안을 제시했고, 양사는 이를 수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권 앞에서 결국 두 조선사는 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사업 지연에는 방사청의 ‘신중론’ 또한 일조했다. 지난해 11월 석종건 방사청장은 “조금 더 신중하게 대응해야 이 사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사청의 미온적인 태도는 양사의 경쟁 완화가 아닌 갈등을 심화시켰다.
방사청은 이후 사업 논의, 양사 의견 청취 등 사업 재개를 위해 노력했지만 현시점까지 이렇다할 효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중재를 핑계로 사업은 더 지연됐다. 지난해 7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마쳤어야 할 KDDX사업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방사청의 주문대로 상세설계를 두 조선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 역시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함정 건조 후 발생한 사고나 문제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서다.
나아가 보안이 생명인 방산, 조선업계의 특성상 기술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두 조선사의 기술이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은 채 건조된 선박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업이 지연되는 만큼 한국의 해군력의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 본래 기업 간 경쟁은 국가 경쟁력 향상이라는 ‘선의의 경쟁’으로 여겨져왔으나 두 조선사의 이권 다툼은 오히려 안보를 약화시켰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한 쪽의 이익을 ‘국가를 위해서’라고 포장하며 서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닌 ‘양보’와 ‘협력’으로 원활한 사업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시장에서 수많은 선박을 건조할 양사의 뛰어난 기술력은 갈등이 아닌 상생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방사청 역시 기업 간 중재라는 명목으로 지켜보기보다는 갈등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방력 강화를 위한 핵심 사업이 본래 목적을 잃은 정쟁의 장이 돼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