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 시추 실패·재정 악화 등 겹쳐...해외 투자 유치로 돌파구 모색
신규 원전 건설 계획도 일단 ‘스톱'...野 탈원전' 정책 유지 여부가 관건
정부의 역점 추진 주요 에너지 정책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좌초위기에 놓였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첫 탐사 시추 실패에 이어 경제성 논란까지 겹치며 해외 투자 유치가 불투명해졌고,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역시 아직 부지 선정조차 착수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 시추 실패·재정 악화·탄핵 여파…'3중고'에 흔들리는 대왕고래

17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지난달 21일 '동해 해상광구 지분 참여 입찰 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해외 투자 유치에 착수했다.
석유공사는 오는 6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은 뒤 평가 심사를 거쳐 7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사업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된 만큼, 이번 입찰이 실제 해외 기업의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개발 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에 따라, 정부는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탐사 시추에 나섰다.
하지만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사업 초반부터 채산성 논란과 분석 업체의 신뢰성 문제 등이 불거지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 505억원 중 497억원을 삭감하면서 또 한번 진통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 발표된 첫 탐사 시추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스 징후가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규모가 유의미하거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특히 영일만 앞바다에 위치한 7개 유망구조 중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됐었던 대왕고래를 먼저 시추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사업 전반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됐다.
정부는 나머지 6개 유망구조에 대해서도 탐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1개의 시추공 작업에 약 1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사업비는 최소 6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미 1차 시추 비용 1000억원 전액을 부담한 한국석유공사의 재정 여건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당초 이 비용은 정부와 석유공사가 절반씩 분담할 계획이었지만, 국회에서 정부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결국 석유공사는 전액을 자체 조달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상당한 이자 부담까지 안게 됐다.
실제로 석유공사는 2020년부터 자본 잠식 상태에 있으며,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부채 규모는 약 21조원으로 총자산(19조7800억원)을 넘어섰다. 차입금 의존도는 84.95%에 달해 재무 구조 전반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석유공사는 올해 초 약 5900억원 규모의 추가 회사채 발행을 계획했지만, 재정 악화와 투자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아직까지 발행 여부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도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전례도 부담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2023년 12월까지 총 78건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종료했다.
그러나 총 투자액 4조8100억원 중 3조1200억원이 회수되지 못하면서, 손실률이 65%에 달했다.
여기에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의 임기 만료도 가까워지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19일 국회 산자중기위 전체회의에서 "1차 시추 결과는 실패보다는 투자로 봐야 한다"며 "시료 1700여 건을 확보한 만큼 보다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사장의 임기가 오는 9월 종료되는 만큼, 후임 경영진에 따라 사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탈원전' 고집 안 한다는 야당…SMR 중심 재편 조짐

원전 확대 정책 역시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에 직면한 상태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기조 속에서 정부는 지난 2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하며, 2038년까지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신규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 공사를 재개했고,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한울 1·2호기를 포함해 총 10기의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 절차를 추진했다.
해외 원전 수주에도 적극 나서며 약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6.3 조기 대선이 치러져 정권 교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돼 윤석열 정부에서 '봄바람'이 불었던 원전 산업 전반에도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확정된 전기본에 따르면 신규 원전 2기의 부지 선정은 내년 9월까지 마무리돼야 하지만, 현재까지 관련 절차는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
이에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공사가 진행 중이던 원전이 정책 변화로 중단된 전례가 있었던 만큼,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신규 원전 건설은 더 쉽게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원전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다만 야당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과 같은 강경한 탈원전 기조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가 최근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탈원전에 선을 긋는 입장을 밝히면서, 당 내부 역시 기존 기조에서 일정 부분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15일 대전에서 원전산업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향후 SMR(소형모듈원자로)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 역시 지난 2월 국회 산업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은 더 이상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며 변화된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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