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확보, 송전망 확충, 고준위 방폐장 마련 등 생산-전달-폐기 '걸림돌'
6개월 밀린 11차 전기본...산업부 "국회 보고 앞둬, 올해 내 확정이 목표"
野·환경단체, 백지화 주장 나서 "근거없는 전력수요 확대로 원전만 확대"
"21일과 26일 산자중기위 법안심사가 산적한 문제 해결 분수령" 분석도

고리원전 전경. 사진=연합뉴스
고리원전 전경. 사진=연합뉴스

최근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와 신한울 3·4호기의 공사 시작 등으로 원자력발전 업계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K-원전 르네상스'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는 등 원전 사업 추진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송전망 부족과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등 원전 건설에 앞서 선결돼야 하는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축포를 터뜨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아직 산적한 문제들이 많은데, 무작정 원전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 '6개월 밀린' 제11차 전기본 보고조차 못해...野·환경단체 "백지화" 주장도

산업부는 지난 14일 브리핑을 통해 '제11차 전력수급계획(전기본)'이 확정되는 대로 신속하게 신규 원전 부지 선정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의 기본방향을 담는 법정 계획으로 2년 단위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다. 전력수요 전망을 예측하고 전력공급계획을 핵심으로 담는다. 국내 전력 발생원의 구성비를 좌우하는 뼈대로 해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관련 산업계와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 건설·발전 계획 역시 전기본이 제시한 방향에 맞춰 수립·시행된다.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을 위한 11차 전기본 실무안(초안)은 2038년 우리나라 최대 전력수요를 129.3GW(기가와트)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신규 원전 최대 3기와 SMR(소형모듈원자로)를 발전에 본격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현재 대비 3배로 늘릴 예정으로, 이에 따른 2038년 전원별 발전 비중은 ▲ 원전 35.6% ▲ 신재생에너지 32.9% ▲ LNG(액화석유가스) 11.1% ▲ 석탄 10.3% ▲ 수소·암모니아 5.5% ▲ 기타 4.6% 등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11차 전기본은 지난 5월 실무안 발표 이후 현재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 국회 보고만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당초 11차 전기본 실무안 초안을 지난해 말, 최종안은 올해 6월 또는 7월에 발표하기로 했다. 전기본이 과거 정부에서 지난 10차까지 대부분 계획기간을 1년 정도 지나서 확정됐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전기본을 계획기간 시작 전에 확정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1차 전기본 확정도  원자력발전 확대 등 여러 부분에서 이견이 발생하며 뒤로 밀렸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연내 11차 전기본을 확정한 후 신규 원전 부지 선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 22대 국회 여소야대 상황에서 원전 재개에 부정적인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거세 11차 전기본 확정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측은 제11차 전기본대로라면 재생에너지 설비가 'RE100(신재생에너지 100%)' 등과 같은 국제적 흐름을 맞추지 못한다고 보며, 신규 원전 건설 역시 반대하고 있다. 

일부 야권 인사들과 환경 단체 등은 지난 18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백지화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해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탈석탄·에너지전환 정책을 지연하고, 근거 없이 전력 수요를 늘려 재생에너지 확대 대신 핵발전소 확장에 치중하고 있다"며 11차 전기본의 문제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 부족한 전력망·고준위방폐물 처리 문제도 걸림돌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비해 부족한 전력망과 이른바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불리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설비는 2023년 기준 14만4421MW(메가와트)로 10년 전(9만3216MW)에 비해 55%가량 증가했지만, 송·배전망 건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일부 발전설비를 놀리는 이른바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의 근간이 되는 전력망을 확충하는 내용을 담은 10개의 '전력망특별법'이 제22대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21대 국회서부터 관련 법안들이 다수 발의됐으나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끝내 모두 폐기됐다. 

게다가 비수도권 곳곳에서는 전력망 건설에 대해 '전력 식민지화'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수요 때문에 비수도권에 혐오시설을 떠넘기는 사업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일 전북 고창에서 열렸던 '신장성-신정읍 송전선로' 건설을 위한 한국전력공사의 사업설명회 역시 주민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30여분 만에 파행됐으며, 전남 함평군의 주민들도 송전철탑 경유 문제로 한전 나주 본사 앞에서 수개월째 반대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도 원전 확대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987년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양은 올해 2분기 기준 1만9300톤에 달한다.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되고 남은 후 강한 방사능과 열을 내뿜는 만큼 지정 장소에서 특별 관리가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를 처리하는 시설이 전무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원전은 많게는 50년 가까이 부지 내 임시 저장 수조에 핵폐기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임시방편도 곧 한계에 다다를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30년부터 한빛·한울·고리·월성·신월성·새울 원전 순서로 저장 수조들이 차례로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며 핵폐기물을 지하 500미터 공간에 별도로 저장할 수 있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시설'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역시 2016년과 2021년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여야 간 원전 찬반양론이 계속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고준위 특별법'의 제정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최근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K-원전'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출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원화된 현재의 원전 수출 방식에 대해 "부족한 수출기술 전문인력이 나눠지면서 수출 역량이 저하되고 있다"며 "역할 구분도 명확하지 않고, 조직이 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도권 경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 사업 기능을 한수원으로 통폐합한 뒤 별도의 공사를 설립해 '총괄 컨트롤타워'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21일과 26일 법안 심사 소위원회에서 전력망·고준위특별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산업부 역시 지난 5월 민간 전문가들이 제안한 실무안을 바탕으로 2024~2038년 적용될 11차 전기본 정부안을 마련해 곧 국회 보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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