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사업비 7조 원 규모의 용인 역삼구역 도시개발사업이 조합장의 장기 집권을 위한 ‘지분 쪼개기’ 의혹에 흔들리고 있다.
이영환 조합장이 주도하는 현 조합 집행부가 인위적으로 조합원 수를 늘려 의결권 구조를 왜곡하고, 이를 통해 서해종합건설(이하 서해종건)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적 표결 체계를 구축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 1개 필지에 20명까지… ‘지분 쪼개기’로 조합원 수 급증
제보자들에 따르면 역삼구역 내 특정 필지의 조합원 자격이 최대 10~20명 단위로 쪼개져 새로운 조합원이 대거 유입된 정황이 포착됐다. 소수였던 특정 그룹의 조합원 수가 단기간에 수십 명으로 불어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서해종건 및 자회사 관계자, 혹은 서해종건 측과 금전적 연계가 있는 인물로 파악됐다. 이들은 조합 임시총회 등 주요 의결 과정에서 위임장을 제출하며 이영환 조합장에 대한 재신임을 조직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합장 역시 서해종건 전(前) 상무이사 출신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 조합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시정비법(재건축)과 달리 도시개발법상 공유지분(토지)자 의결권 행사는 합법적 절차”라며 “서해 그룹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하고 대표자를 지정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서해종건 측 관련자들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장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법원도 "조합 운영 투명하지 않다" 지적
법원도 이미 지난 4월 “도시개발법상 공유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을 부풀리는 행위는 부적법하다”며 대표자 지정 방식으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해당 판결은 도시개발법상 최초의 관련 사례로 기록됐다. (수원지방법원 2023가합23794/수원고등법원 2024나25066, 항소 포기 확정)
이 조합장의 법적 정당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0월 법원은 조합장을 상대로 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이는 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당시 재판부는 “조합장 직무를 즉시 정지할 경우 사업 절차에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을 뿐, 판결문에 “조합 운영이 투명하거나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들에서 조합장 직무 정지가 있었고, 이번 건은 혼란을 고려해 극단적 조치를 유보했을 뿐”이라며 “독단적 운영이나 지분 쪼개기까지 정당화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조합장은 현재 대법원에서 사업권 지위를 인정받은 시행대행사인 다우아이콘스를 배제한 채 별도의 해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도 “대법원 판결은 청구 취지가 잘못돼 패소한 것일 뿐”이라며 또 다른 소송을 제기해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 같은 강경 행보의 배경엔 자본 논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 조합장은 “서해종건이 NPL(부실채권) 매입과 토지 확보 등에 1700억 원가량을 투입했다”고 주장하며 실질적으로 조합과 서해종건의 이해관계가 긴밀히 얽혀 있음을 시사했다. (관련 기사: 본보 11월 24일자 <용인 역삼구역 개발사업 또다시 격랑… '다우' 사업 지위 인정 판결에도 조합 '결별' 고수> 참조)
◇ 전문가들 “조합 제도 악용 사례… 공적 감독 필요”
도시개발 전문 법조인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 내부 갈등이 아닌 ‘제도 악용’으로 보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조합장의 지위 유지를 위해 지분 쪼개기를 활용하는 것은 조합을 사적 이익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라며 “이는 조합원 구성의 대표성을 왜곡하고 전체 공익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도시개발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시행대행사의 지위마저 무시하고, 건설사 직원이 조합원으로 둔갑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이미 정상적인 도시개발사업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하며 관할 관청의 공적 개입과 감사를 촉구했다.
7조 원 규모의 용인 역삼구역 개발사업은 오는 12월 18일 선고 예정인 ‘임원지위 부존재 확인’ 본안 재판(수원지방법원 2025가합11711)을 앞두고 있다. 조합장의 장기 집권 논란과 지분 쪼개기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용인 역삼구역 개발사업은 ‘법적 리스크’와 ‘정당성 위기’라는 이중의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