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사과부터 유럽 토마토까지…‘디마케팅(demarketing)‘에서 답을 찾다
변화하는 농업에는 새로운 마케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성공한 농업인의 마케팅 노하우의 현재 농업을 준비하는 청년창업농들의 마케팅 사례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맛 없는 사과'라고 모르시죠? 이게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아세요?"
경북 안동시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 중인 창업농 김수재(37) 씨. 그는 자신이 재배 중인 사과 품종을 ‘맛 없는 사과’라고 소개했다. 시중에 유통 중인 타 사과 품종 대비 당도를 대폭 낮춘 탓이다.
그에 따르면 당도가 높은 사과를 재배했던 지난 2017년 대비 '맛 없는 사과(당도 10 브릭스 이하)'를 유통한 작년 매출은 30% 가량 상승했다. 지역 도매시장, 공판장 등에서 그와 단독 계약을 맺고 싶다는 러브콜도 쏟아졌다. 단맛을 기피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김씨는 "어느 날 어머니가 '요새 사과는 너무 달아서 못먹겠다. 사과 맛의 본질이 깨지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며 "그때 당도가 낮은 사과의 성공 가능성을 엿 봤다. 지금은 400여 평 규모의 노지에서 당도가 낮은 사과를 재배하고 있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최근 작물 품질의 상향평준화로 어느 과실을 맛 봐도 달고 영양성분이 높다"면서도 "다만 중장년층은 당도가 과도하게 높은 과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수요를 사로잡고자 디마케팅 전략을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디마케팅 전략 덕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중장년층 고객이라는 확정수요를 사로잡게 됐다"며 "다른 농장과 다른 마케팅 전략을 펼치겠다는 역발상이 이런 성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디마케팅(demarketing)이란 고객의 폭을 의도적으로 줄여 제품을 합리적으로 판매하는 기법으로, decrease(감소)와 marketing(마케팅)의 합성어다. 무분별하게 고객을 늘리기보다 실제로 수익에 도움이 되는 고객에게만 집중, 수익을 증대시킬 때 주로 사용된다.
유럽식 토마토 재배 창업농 "외국인의 입맛도 고려해야죠"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을 겨냥한 디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창업농도 있어 눈길을 끈다. 경북 상주시에서 캄파리 품종(유럽 토마토의 일종)를 재배 중인 이숙현(39) 씨다. 그는 "지난해 국내 거주·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며 "이들이 원하는 작물을 재배하면 고정수요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재배 품종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직접 유럽행 열차에 몸을 싣기도 했다. 독일,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을 거치며 각종 작물에 대한 데이터를 모았다. 2개월에 걸친 조사 끝, 토마토 캄파리 품종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토마토 농장들이 작물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스마트 팜'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이들과 다른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특히 토마토 작물은 아시아종과 유럽종이 당도, 크기, 모양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아시아 토마토만 재배하면 서양권 외국인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캄파리를 재배 유통한 뒤로 매출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4개 단동 하우스에서 국내 토마토와 캄프리를 함께 재배 중이었으나 캄프리 품종에 대한 비중이 넓어지면서 3개 단동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농업인 역시 기업 경영 마인드로 농장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존과 다른 마케팅 전략을 세우겠다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디마케팅' 전략처럼 확정수요를 노리겠다는 경영 시도로 창업농들의 부진한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세준 기자 to_serap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