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1차 생산물’ 공식은 옛말?…‘2차 가공’에 주목하는 창업농들

[핀포인트뉴스=홍미경 기자]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농업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젊은 청년농부들이 농촌에 정착하면서 부터다. 이들은 1차 생산에 머물지 않고 제품을 가공해 판매하고 농업을 서비스업으로 한 단계 올려놓는 4차・6차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변화하는 농업에는 새로운 마케팅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성공한 농업인의 마케팅 노하우의 현재 농업을 준비하는 청년창업농들의 마케팅 사례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경북 안동시에서 체리 농장을 운영 중인 창업농 이선재(33) 씨. 사진=홍미경 기자.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보시면 되요. 1차 생산물만으로는 빚을 탕감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12일 오전, 경북 안동시에서 체리 농장을 운영 중인 창업농 이선재(33) 씨는 2차 가공물을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1차 생산에 주력하겠다’는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씨에 따르면 최근 귀농 길에 뛰어 든 창업농들이 늘어나면서 작물 별 1차 생산물에 대한 공급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창업농들은 인근 도매시장 등 지역 상권에 생산물을 전적으로 유통하고 있는데 공급량이 수요량을 앞지르면서 상품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기존 농업인들이 농·축협, 유통 대기업, 단골 고객 확보 등으로 판로를 다각화한 반면, 이제 막 농업에 뛰어 든 창업농들은 지역 상권을 중심으로 마케팅 경험을 쌓고 있다”며 “이러한 영향으로 지역 도매시장의 1차 생산물 공급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당장 경북 안동시장의 체리 가격만 보더라도 지난해 대비 9% 남짓 떨어졌다”고 말했다.

덧붙여 “특히 농지 임대비, 시설 구축비 등으로 빚을 안고 시작한 창업농들은 이러한 현상이 농장 운영에 차질을 빚는,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2차 가공식품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2차 가공식품은 유통이 편리하다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판로 확대보단 2차 가공물 생산…왜

이날 현장에서 만난 창업농들은 2차 가공물 생산이 1차 생산물의 판로 확대보다 유리한 고지에 위치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농·축협 등으로 판로를 확대할 경우 상품 질·당도 등 요구 기준치가 높은 반면,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기준치가 낮기 때문에 초기 투자 없이 매출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안동시 북문동에서 사과 잼을 유통하고 있는 창업농 김시옥(26) 씨는 “지난해 가입한 모 협회에 사과 유통을 의뢰했더니 당도가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며 “사과 당도를 높이고자 꿀사과로 품종 변경을 하려했더니 초기 투입 비용만 3000만 원 가량이 진단됐다”고 말했다.

안동시 북문동에서 사과 잼을 생산, 유통하고 있는 김시옥(26) 창업농. 사진=홍미경 기자.

그러면서도 그는 “반면 2차 가공물의 경우, 저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판로 확대 없이 잉여 생산물을 처리할 수 있다”며 “초기 투자금이 낮고 유통에 대한 기준치가 낮다는 장점도 있어 창업농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창업농 박모(33·익명요구) 씨도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2차 가공이 창업농들에게 있어 필수 생계 수단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씨는 “일반 청년창업농들은 지역 농업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판로 확충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면서도 “적은 판로로 유통하다보면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2차 가공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엔 아픔이 따르는 법”…2차 가공 창업농에 대한 지적도 나와

‘2차 가공물 생산에만 주력하겠다’는 일부 창업농들의 태도는 청년농-지역 사회 간 융합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로 확대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로 가공식품 생산에 주력하겠다는 태세는 지역 농업 사회와 등을 지는 행위라는 것.

익명을 요구한 승계농 김모 씨는 “기존 농업인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지역 사회에 융합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2차 가공물 생산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은 마치 기존 농업인들이 이미 여러 판로를 장악한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회피적인 경영 마인드는 결국 국가 농업 경쟁력을 저해할 뿐더러 지역 사회 융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미경 기자 blish@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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