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 동행한다던 '기회 경기도', 예산 삭감은 권리 삭제이자 기만"
"평생교육, 장애인에게는 '취미' 아닌 세상 향한 '통로'… 가장 낮은 곳 외면 말아야"

"장애인 예산 삭감은 곧 권리 삭제"
최근 경기도청 앞에서는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경자연)의 호소가 울려 퍼졌다. 경기도가 2026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장애인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기회 수도'를 표방하며 약자와의 동행을 약속했던 민선 8기 경기도정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본지는 용인시 기흥구에서 성인 중증장애인의 교육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떼루아장애인평생학교’ 김정태 교장을 만나, 이번 '예산 절벽' 사태가 현장에 미칠 파장과 장애인 평생교육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 "충격 넘어 멘탈 붕괴... 약자 예산으로 국비 매칭? 있을 수 없는 일"
김정태 교장은 이번 예산 삭감 소식에 대해 "충격을 넘어 '멘탈 붕괴' 상태"라고 격앙된 심경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경기도는 '기회의 균등',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장애인과 노인의 삶을 존중하겠다고 천명해왔기에 예산 삭감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장은 "경기도민 중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자들의 삶을 담보로 국비 사업 매칭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현장의 위기감은 이미 '경고등' 수준을 넘어섰다. 김 교장은 "지금도 자립 진영의 예산은 사회복지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조차 맞추기 힘들 정도로 열악하다"며 "장애인평생학교 종사자들은 겨우 경기도 생활임금 수준을 받고 있어 처우 개선은커녕 장기 근속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여기서 예산이 더 삭감된다면 인원을 줄이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축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기업 후원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내년부터는 당장 학교 운영을 위해 거리로 나가 ‘장터’라도 열어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 "평생교육은 '취미' 아닌 '생존'... 삭감은 고립 가속화할 것"
이번 삭감안이 확정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교육 당사자인 장애인 학생들이다. 떼루아장애인평생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김 교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휠체어 접근조차 안 되는 단차 등 물리적·심리적 장벽 때문에 장애인에게 개방된 곳은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에게 평생학교는 학교이기 이전에 '해방구'이자, 자신의 삶을 가꾸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예산 삭감은 이들을 다시 집 안으로, 시설 안으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비장애인 중심의 행정을 향해 날카로운 일침도 가했다.
"비장애인들도 결국 늙고 병들면 '사회적 장애'를 겪게 된다. 키오스크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환경적 장애를 겪고 고립될 수 있는 상황으로 지금 장애인 예산을 깎는 것은 미래의 여러분 자신을 고립시키는 일과 다름없다" 덧붙였다.
◆ "시설은 '억압', 학교는 '자립'... 김동연 지사, 말과 행동 일치해야"
김 교장은 평생교육이 '탈시설'의 핵심 교두보임도 강조했다. 그는 "시설에서의 삶이 '통제'와 '순종'이었다면, 사회에서의 삶은 '자유'와 '책임'"이라며 "평생학교와 자립센터는 장애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돕는 부모와 같은 안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예산 삭감은 이러한 안전망을 걷어차는 행위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장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향해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말로는 '행복한 경기도', '기회의 경기'라고 하지만 행동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경기도는 대한민국 최대 광역지자체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약자들을 위해 먼저 행동하는 경기도가 되어달라” 요청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장애인 학생과 가족들에게 김 교장은 "떼루아장애인평생학교의 슬로건처럼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고, 도전하는 당신은 아름답다'"며 "포기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도전하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장애인의 권리를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행정 편의주의 앞에서도, 떼루아장애인평생학교와 김정태 교장은 여전히 사람을, 그리고 자립을 외치고 있다. 2026년 경기도 예산안이 과연 누구를 위한 '기회'인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한편, 김정태 교장은 현재 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과 용인시 장애인위원회 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떼루아장애인평생학교를 이끌며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는 '통합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과 정책 제언 활동을 병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