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언스플래쉬]
[사진=언스플래쉬]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탈중국'이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미국 의회가 중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을 권고한 가운데 국제적 흐름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원료 자급률이 낮은 한국은 보건안보 측면에서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美 의회 권고안 공개…글로벌 '탈중국' 본격화

21일 업계에 따르면 미·중 경제안보 검토위원회(USCC)는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 미국인이 복용하는 의약품의 상당량이 중국산 원료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를 국가안보 리스크로 규정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원료의약품(API)·핵심출발물질(KSM)의 원산지 및 사용량 데이터 수집 권한을 부여하고 중국산이 아닌 원료 사용을 장려할 규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미국 보험청(CMS,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센터) 조달 정책까지 개편해 미국 및 동맹국의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팬데믹 이후 노출된 공급망 불안, 지정학 갈등 심화, 중국의 API 생산 독점 구조가 결합되며 글로벌 탈중국 전략이 제도화 단계로 진입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공급망 재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은 향후 5년 내 경구용 API의 25%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방 분야 의약품의 원료 조달을 제한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일본은 항생제를 반도체와 함께 경제안전보장의 핵심 품목으로 지정해 생산시설 건립에 수천억 원대 보조금을 투입 중이며 유럽연합(EU)은 의약품 부족 대응 플랫폼을 가동해 공급·수요 데이터를 상시 관리하고 있다.

한국은 자급률 31%…"약가우대·인프라 지원 병행해야"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31%에 그친다. 2022년 11.9%까지 떨어졌던 자급률이 일부 회복됐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이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취약 구조다. 특히 항생제 원료의 75%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페니실린계 원료 자급률은 최근 5년간 0%로 사실상 전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완제의약품 시장이 2020년 23조원에서 2023년 31조원 규모로 성장한 것과 달리, 원료의약품 시장 규모가 같은 기간 오히려 축소된 점도 악재다. 원료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 폐기물 처리 비용이 크고 환경 규제도 까다로운 데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낮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국산 원료 사용에 대한 약가 가산 적용 범위를 국가필수의약품 제네릭 외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공급중단보고 품목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등재 품목의 가산 재평가를 통해 국산 원료 사용을 지속 유도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또한 항생제 원료 공장 설립 보조금, 친환경 설비 세제·융자 지원, 공동 폐기물 관리 인프라를 갖춘 산업단지 조성 등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요구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완제 중심의 성장은 가능하지만 원료 기반이 취약하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며 "연구개발(R&D) 중심 정책과 단기적인 수급 대응을 넘어 국가 보건안보 관점에서 원료 생산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핀포인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