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DX 투톱 모두 유임…사장 승진 1명·위촉 3명 등 최소 규모 인사
SAIT·DX CTO에 글로벌 석학·SW 전문가 보임하며 기술경영 강화

삼성전자가 내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 가운데, 쇄신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이후 처음 단행하는 인사였던 만큼 전면 개편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의 상승세를 고려해 내년에도 현 체제에 힘을 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21일 사장 승진 1명, 위촉업무 변경 3명 등 총 4명 규모의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 사장 승진 2명, 위촉업무 변경 7명 등 9명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인사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 양대 부문장 2인 대표 체제 복원…반도체·갤럭시 '순풍'에 힘 실어

노태문 사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스마트폰·가전을 총괄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과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직책을 모두 유지하게 됐다. 전영현 부회장 역시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 자리를 그대로 이어간다.
이로써 양대 부문장이 대표이사를 맡는 2인 체제가 다시 복원됐다. 삼성전자는 본래 DS·DX 부문장 투톱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지난 4월 한종희 전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이후에는 전영현 부회장 단독 대표 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번 인사 폭이 크지 않았던 배경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라는 두 핵심 사업이 동시에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직을 흔들기보다, 이미 효과를 내고 있는 사령탑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을 맡은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삼성전자가 통상 연말에 정기 인사를 단행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깜짝 투입’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준 데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부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전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DS부문은 공정 효율 개선과 공급 안정성 확보, 차세대 HBM 기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후 DS부문은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를 발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3분기에는 영업이익 12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5개 분기 만에 ‘분기 영업이익 10조원’을 회복했고, 최근에는 글로벌 AI 반도체 ‘큰손’으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에 합류하며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에도 성공했다.
노태문 사장 역시 DX부문의 실적 회복을 이끌어낸 핵심 인물로 꼽힌다.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DX부문장 자리가 비게 된 올해 4월, 노 사장은 직무대행으로 투입돼 스마트폰·가전 사업 전반을 총괄하게 됐다. 당시 DX계열 사업은 글로벌 시장 경쟁 심화로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이었으나, 노 사장은 플래그십 중심 전략을 유지하며 제품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 S25 시리즈는 300만대 판매 시점을 전작보다 두 달 이상 앞당겼다. 7월 공개된 갤럭시 Z 폴드7은 역대급 '슬림 폴더블'이라는 호평 속에 미국 시장에서 초기 판매량이 전작 대비 50%가량 늘었다.
◆ 하버드 석학·SW 전문가 전면 배치…'기술 중심 경영' 가속 의지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기술·소프트웨어 인재’를 전면에 앞세웠다는 점이다. 이재용 회장이 강조해온 기술 중심 경영 기조가 조직 재편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전영현 부회장이 겸임하던 삼성기술연구원(SAIT) 원장 자리에는 박홍근 사장이 새로 위촉됐다. 박 사장은 내년 1월 1일 삼성전자에 합류할 예정으로,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25년 가까이 화학·물리·전자 등 기초과학과 공학 전반을 아우르는 연구를 이끌어온 글로벌 석학이다.
삼성벤처투자 대표인 윤장현 부사장은 삼성전자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 겸 삼성리서치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미래 신기술 연구와 인공지능(AI) 드리븐 컴퍼니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각 분야 최고 전문가를 SAIT 원장 및 DX부문 CTO에 과감히 보임, AI 시대 기회 선점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룹이 중장기 전략의 중심을 ‘AI·소프트웨어’에 두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 '경영 안정' 선택한 이재용…등기이사 복귀로 이어질까

한편 삼성전자가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 안정’ 기조를 분명히 한 만큼,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삼성전자 등기이사를 지냈지만, 국정농단 사태 등 각종 이슈가 발생한 이후에는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올해 대법원 판단으로 사법 리스크가 모두 정리되면서 등기이사 복귀를 가로막던 형식적 장애물은 사라진 상태다. 이 회장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이사회에 합류해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재계와 삼성 안팎에서는 '책임경영' 완성을 위해 이 회장이 조속히 이사회에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그간 "이 회장이 등기임원에 복귀해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