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땜질’에 애꿎은 시민들 방패...경제전문가, 전기 펑펑 쓰는 기업들 먼저 손봐야

[핀포인트뉴스=안세준 기자] 여름철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적용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한국전력공사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적자 기업’ 한전의 재무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업용 전기요금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용보다 4배 이상의 전기를 소비하는 ‘전기료의 큰 손’이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오히려 가정용 요금 개편에 급급한 모습이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를 폐지하고 가구에게 지급됐던 4천원을 도로 회수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공제 혜택은 소득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제공됐기때문에 제도가 없어지면 애꿎은 저소득층까지도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가정용 누진제보다도 일단 산업 전기료 인상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대부분이 원가보다 훨씬 저렴한 심야 요금제에만 집중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며, 과소비를 일으키고 있고 이는 시장 경제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산업계의 반발로 인상은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간 산업계는 전기 요금 인상 계획에 강력하게 반발해왔다면서, 전기료를 인상하면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원가 인상이 뒤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고 전했다.
한전 역시 현재로서는 상업용 전력가격을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 눈치다. 김 사장은 한전의 공시 발표에서 적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안인 ‘티끌모아 태산 전략’을 강조했다. 결국 산업계를 의식한 한전이 적자 손실을 국민들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국전력은 공시를 통해 이번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에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개선이 가장 핵심이라고 발표했다.
올 여름철 누진제 기준을 완화하는 대신 그 비용을 공제제도를 폐지로 보충하겠다는 속셈이다. 한전이 4천억 가량의 예산을 가장 확실하게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는 월 200kWh 이하 사용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월 4천원까지 할인해주는 제도다. 혜택이 되는 대상은 958만 가구로 총 3964억원을 지원받았다.
제도에 대해 김 사장은 “한전은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를 통해 연간 4천억 원 가까운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면서 “그에 비해 연봉 2억원의 한전 사장인 나도 할인을 받고 있다”며 폐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는 저소득층을 간과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소득과 상관없이 전기료를 적게 쓰는 가구는 모두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산업 필수사용공제 대상자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산업 필수사용공제 대상이 약 1천만명에 달하고 저소득층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제도 개편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관측했지만, 한전은 공시안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전력 당사는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하면 1단계 요금을 내는 956만 가구의 요금이 오를 수 있다”면서도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요금 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한전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과반이 넘을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1~3월 전력소비량에 따르면, 산업용은 전체 전력 소비량 52.2%를 차지하는데 가정용은 13.0%에 불과하다”면서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소에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손을 댈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 경제 평론가는 “기업의 전기 과소비를 종용하는 초저가 심야 (경부하)요금이 조정돼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며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2016년 한국의 산업용 소비량은 해당국가 평균의 2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제는 전기 요금 인상을 조금 큰 틀에서 손을 봐야 할 부분”이라며 “가정용 누진세 뿐만 아니라 산업용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산업용 경부하 요금 체계는 시장을 가장 많이 왜곡하는 형태로 가장 먼저 수술해야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거셌다.
대부분 기업들이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밤에 주로 공장을 돌려 이득을 보고있어서다.
현행 산업용 전기요금은 여름철 하루를 기준으로 경부하, 중간부하, 최대부하 시간대로 나눠 각기 다른 요금을 적용한다. 이 중 경부하 요금은 전력 단가보다 전기요금이 낮아,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산업용 전기 판매량의 48%는 경부하로 집중 분포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한전은 산업용 경부하 요금 개편에는 아직까지 ‘검토’에만 그쳤다는 평가다.
최근 공시 발표에 따르면, 한전은 주택용 누진제 개편안 및 필수사용량 보장제 폐지에 대한 윤곽을 잡아가는 한편,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 개편은 장기 과제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이사회는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하계 누진제 개편으로 발생하는 회사의 재무적 손실을 보전해 재무 부담이 지속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합리적 요금체계를 실현해야 한다며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원칙을 분명히 해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이에 한전이 밝힌 전기요금 개편안의 윤곽에는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 개편은 비어있다. 의결안 내용은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의 폐지 혹은 수정·보완, 누진제 폐지 혹은 선택적 전기요금제 등으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등이다.
특히, 요금 개편 내용이 포함된 전기 요금 약관 개정 인가 신청을 위해 한전이 오는 11월 30일까지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하고 내년 6월 30일까지는 정부의 인가를 득하도록 한다는 일정도 확정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간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작업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며 이번에도 한전이 산업계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평가다.
김 사장은 그동안 원가 이하로 받는 전기요금 규모가 4조7천억 원에 이르고 원전 계획예방정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세 등에 따라 비용 부담이 커진 데서 한국전력 적자의 이유를 찾았다.
이에 맞서 산업계는 우리나라는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전기를 많이 쓰는 에너지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이므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특히 전력 소비량이 많은 철강, 반도체, 정유업계 등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향후 기업 경쟁력 훼손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산업부 관계자 역시도 “현재 산업용 전기료 인상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전기료 인상에 선을 그었다.
결국 누진제 완화의 화살은 가장 먼저 소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안세준 기자 to_serap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