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소비자 신뢰지수가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금값은 예상 밖의 약세 흐름을 보이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 심리 악화는 위험자산 기피 심리를 자극해 금 가격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에는 전통적 연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컨퍼런스보드가 25일(현지 시각) 발표한 1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8.7로 집계됐다. 10월 수정치인 195.5에서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시장이 예상한 93.5보다도 더 부진한 결과다. 미국 소비자의 체감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금 시장은 온스당 4,100달러 선을 지키는 데 그치며 뚜렷한 상승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통상 ‘경제 불안 → 안전자산 선호 → 금값 상승’이라는 공식이 작동하지만 이번에는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뚜렷하게 유입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달러 약세 압력, 미국 국채금리 조정 등 금 가격에 유리한 변수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일부 전문가는 금 가격의 ‘고점 부담’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4100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단기 추가 매수를 주저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컨퍼런스보드의 다나 피터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1월 소비자 신뢰도는 최근 몇 달간 정체되다가 다시 떨어지며 4월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며 “지수를 구성하는 다섯 개 항목이 모두 약세 흐름을 보이거나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경제가 소비 측면에서 둔화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선행적 경고음’이라는 평가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 위축이 확인됐음에도 금 시장은 이를 즉각적인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두 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첫째, 연준의 정책 불확실성이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빠르게 내릴지에 대한 전망이 갈리고 있다. 금리 인하기대가 명확해지기 전까지 금 시장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둘째, 주식·채권 시장의 버티기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악화됐으나 미국 기업 실적은 예상보다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고,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위험자산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안전자산으로의 급격한 이동 신호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금 가격이 장기 상승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단기적으로는 조정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미 높은 수준까지 올라온 만큼 새로운 매수 동력이 등장해야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 시장 전문가들은 “금값은 여전히 강한 수요 기반을 갖고 있지만 정책 이벤트와 경기 지표에 따라 단기 등락이 반복될 것”이라며 “소비자 심리 악화만으로 금이 즉각 상승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순한 접근”이라고 말한다.
미국 경제의 소비 둔화 신호에도 불구하고 금 시장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는 가운데, 향후 연준의 정책 스탠스와 경제 지표가 금 가격의 주요 변수로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