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안정적이지만 산업계 부담 증가…고환율로 체감 유가 배럴당 100달러
디커플링현상, 환율 영향 심화…가스공사, LNG 가격 급등해 재무 부담 커져
한전도 발전단가 상승해 전기료 인상될 수도…정부·공기업 요금 유예 한계
산업계, 환율 충격에 수익성 악화…중장기 대응, 환율 반영 에너지 체계 필요

국내 산업계가 최근 국제유가 안정세에도 '고비용 에너지 시대'에 접어들어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지적됐다.
달러당 환율이 최근 1500원대에 가까운 고환율로 인해 산업현장에서 체감하는 유가가 이미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올라서 원가 부담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주간거래에서 환율이 146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4월 이후 7개월 만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구조가 악화하면서 새해 전기·가스 요금 인상 압력이 산업계로 전가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의 제조 경쟁력이 흔들리면서 수출 기반 자체가 위축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됐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약 70~80달러 박스권에 머물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가 실제 체감하는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국제유가와 체감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현상이 환율 영향으로 심화하면서 그 부담이 산업계에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분석했다.
그 핵심 원인으로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낮은 고환율 상황을 꼽았다. 에너지를 대부분 달러로 수입하는 구조에서는 국제유가가 내려도 원화 기준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트상으로는 유가가 하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산업계가 체감하는 가격은 여전히 고유가 시기와 큰 차이가 없고 일반 소비자가 유가를 단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이 만들어 내는 체감 단가가 사실상 '진짜 가격'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환율 효과가 단순한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 전력 공급 체계 전반에 부담으로 확산해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고환율 영향으로 원가 회수율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로 인해 연료비 증가분을 도시가스 요금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실제로 회수되지 않는 비용이 '미수금' 형태로 쌓일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최근 수조 원 단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분기에는 미수금이 약 3조원 늘었으며 이는 가스요금 동결 정책과 맞물린 결과로 분석됐다. 이러한 미수금은 회계상 자산으로 잡히지만 실제 현금화가 어렵다는 점에서 재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LNG 수입 단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가스공사는 단기 차입(기업어음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금융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가스공사는 미수금 규모가 약 13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공개하며 요금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무 압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실적에서도 연간 영업이익 하락과 미수금 증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현재의 요금체계와 고환율, LNG 가격 상승이 맞물려 가스공사가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전 역시 LNG 가격 상승으로 발전단가가 오르고 이로 인해 SMP(발전도매가격)가 상승하면서 전력 구매 비용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고환율이 만들어 낸 만성적인 비용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3분기에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국제유가 하락 덕분으로 알려졌다. 환율과 유가가 동반 상승할 경우 LNG와 석탄 등 연료비 부담이 높아지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비용 압박은 결국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분석됐다.
그동안 정부와 공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며 요금 조정을 유예해 왔지만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계는 경기 둔화와 공급망 경쟁 심화,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세 가지 부담이 겹치면서 상황을 '삼중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유 업계는 원유 도입을 전량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 탓에 환율 충격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말 대비 환율이 10% 오를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원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정제마진이 완전히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환차손까지 겹칠 경우 적자 전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풀이됐다.
철강업계는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같은 주요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글로벌 해상 운임까지 상승하면서 조달 비용 부담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고환율로 인해 원자재 수입 비용이 추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항공업계는 국제선 여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실질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은 '빛 좋은 개살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를 모두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 구조에서 고환율이 영업이익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초 체력이 약한 저비용항공사(LCC)의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국제유가가 하락했지만 산업계의 비용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고 지금 문제는 에너지 가격이 아니라 환율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용"이며 "이러한 비용은 결국 기업들의 고지서로 돌아간다"고 산업계가 직면한 상황을 단적으로 요약했다.
업계는 기업들의 수출 마진이 줄어드는 만큼 중장기적 대응전략이 필요하며 기존의 유가 중심 원가 공식에서 벗어나 '환율을 반영한 에너지 비용 체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