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 매각 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절차의 투명성 부족, 매수·매도자 간의 이해관계 충돌, 그리고 무엇보다 불명확한 성장 전략이 맞물리며 이번 거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화학 기업의 소비재 진출이라는 ‘사업 다각화’의 그림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리한 확장의 그림자만 짙다.
우선 애경산업의 현황을 보자.
애경산업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이라는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장성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화장품 사업은 중국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한한령 이후 구조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의 소비 패턴 변화, 로컬 브랜드의 급부상, K-뷰티 브랜드의 과잉 공급 등 삼중고가 겹치며 반등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생활용품 부문 역시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유통 채널이 할인점과 대형마트에 집중돼 있어 이익률은 계속 하락 중이다. 온라인 전환에 뒤처진 점도 뼈아픈 약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광산업이 애경산업을 인수하겠다는 것은 곧 ‘구조적 문제를 함께 떠안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태광산업의 논리는 단순하다.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가 경기 변동에 취약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소비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재 산업은 화학처럼 공장 가동률만 높인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브랜드 경쟁력, 마케팅, 소비자 접점 관리라는 전혀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 태광산업이 과연 이 영역에서 성공 경험이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각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적 불투명성이다. 잠재 인수자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지적, 매각 주체의 협상 구조가 불합리하게 설계됐다는 문제 제기가 이미 있었다. 이는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시장에도 ‘밀실 거래’라는 의혹을 남겼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M&A가 결국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드물다.
태광산업의 행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경고한다. 인수 직후에는 화려한 외형 확장이 가능하겠지만, 애경산업의 내재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손실만 커질 수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는 유사한 실패 사례가 많다. 무리한 다각화 끝에 핵심 경쟁력마저 잃은 기업들의 전철을 태광산업이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이번 인수는 태광산업이 스스로의 불안을 소비재로 덮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불안을 감추려는 전략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부른다. 애경산업 인수가 진정한 시너지로 이어지려면 단순히 브랜드를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 개편과 혁신적 사업 모델까지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략은 그저 ‘다각화’라는 단어에 기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태광산업은 이번 인수를 통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또 하나의 실패 사례를 쓰게 될 것인가. 현 시점에서 답은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무리한 확장은 결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