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K의 명작과 첫 문단, 그리고 명화

'네덜란드의 화가 얀 브뤼겔(Jan_Brueghel,1568~1625)과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1649)가 1615년 함께 그린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 죄의 시작’. 출처= Geheugen van Nederland
'네덜란드의 화가 얀 브뤼겔(Jan_Brueghel,1568~1625)과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1649)가 1615년 함께 그린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 죄의 시작’. 출처= Geheugen van Nederland

인간이 한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음에 이르는/ 금단의 나무 열매를 맛봄으로써/ 죽음과 온갖 재앙이 세상에 들어왔고/ 에덴까지 잃게 되었으나, 이윽고 한 위대한 분이/ 우리를 회복시켜 복된 자리를 도로 얻게 하셨으니/ 노래하라 이것을. 하늘의 뮤즈여. 호렙이나 시나이의/ 외진 산꼭대기에서 저 목자에게 영감을 부어주어/ 한 처음에 하늘과 땅이 어떻게 혼돈으로부터 생겼는가를/ 처음으로 선민(選民)에게 가르치셨던 그대여./혹시 시온산과 성전 바로 곁을/ 흐르는 실로아의 냇물이 더욱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면 그 때문에 내 청하노니/ 부디 나의 모험적인 노래를 도우시라/ 이는 중층천(中層川)에만 머물지 않고 아오니아 산보다 / 더 높이 날아올라. 일찍이 산문에서도 시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그런 주제를 추구하려는 것이니./”(존 밀턴 저, 조신권 역, 문학동네, 2010)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처럼 구전 서사시의 전통에 따르는 존 밀턴의 실낙원은 신맞이(迎神) 굿으로 서두를 연다. 인간 원죄와 신맞이 뮤즈를 부르면서 독자를 빠르게 주제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몰입을 유도하는 서술 기법이다. 첫 문단부터 단어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웅장한 이유다. 이 때문에 운율이 거의 없는 무운시(無韻詩)이면서도 운율이 있는 것처럼 가슴 뜨겁게 읽힌다. 노골적으로 산문에도 시에도 없는 주제를 탐구하겠다고 노래해 장중한 서사시를 암시하고 있다.(본문에 나오는 호렙, 시나이, 실로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지역과 장소다. 호렙(Horeb,건조,황폐라는 뜻)은 광야의 산(모세가 억압의 이집트를 탈출한 출애굽 후 율법을 받은 산)이고, 시나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사이의 광야. 현재의 시나이 반도다. 실로아는 예루살렘 동편 기드론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개천이다.)

미국 태생 화가 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820)의 '낙원에서 아담과 이브의 추방, 1791), 출처=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The National Gallery of Art,아발론 기금 및 후원자 영구 기금).
미국 태생 화가 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820)의 '낙원에서 아담과 이브의 추방, 1791), 출처=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The National Gallery of Art,아발론 기금 및 후원자 영구 기금).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 淸敎徒 革命, 1642~1649) 좌절과 실명(失明)의 고통 속에서 쓴 존 밀턴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1667)’은 르네상스가 몰고 온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성공의 시기에 나온 불멸의 대서사시(大敍事詩). 실낙원은 아담과 하와(이브)가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 지옥에 떨어진 사탄 이야기다.

밀턴은 1640년 전후부터 로마제국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BC 70~BC 19, 서사시 아이네이스 저자)를 능가할 만한 그리스도교 서사시를 쓸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의 청교도 혁명(으로 늦어졌고, 실명(失明) 후인 1650년대 말에야 구술(口述)로 쓰기 시작했다. 원고는 1663~1664년 쯤 완성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퇴고(推敲, 완성된 글을 다듬는 것)런던 대역병(1665~1666년 페스트 유행)’, 런던 대화재(1666)로 출판이 늦어졌다. 결국 16674월에야 런던 새뮤엘 시먼스에서 나왔다. 초판 당시 10권으로 나왔으나 사망 직후인 1674년 제2판부터 난해한 단어에 주석 등을 붙여 12권으로 나왔다. 2009년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100’에 포함됐다.

네덜란드 일러스트 마이클 버거스(Michael Burghers, 1647~1727)가 존 밀턴의 '실락원'을 읽고 1695년 그린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화 하와(이브)'. 존 밀턴의l 'The Poetical Works' 362쪽. 대영도서관 Mechanical Curator 컬렉션. photo by wikipedia
네덜란드 일러스트 마이클 버거스(Michael Burghers, 1647~1727)가 존 밀턴의 '실락원'을 읽고 1695년 그린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화 하와(이브)'. 존 밀턴의l 'The Poetical Works' 362쪽. 대영도서관 Mechanical Curator 컬렉션. photo by wikipedia

실낙원은 겉으로는 사탄과의 싸움이야기이지만 인간의 타락, 회개, 구원을 담고 있지만 자유와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뜻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밀턴의 공화주의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열정이 담겨진 작품이라 하겠다. 실명과 청교도 혁명 시기(Puritan Revolution,1639~1660년 사이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벌어진 내전) 영향으로 개신교적(청교도) 가치관이 반영됐다.

실낙원은 어려운 성경 구절, 유일신 사상, 호메로스(Homeros, BC 800년 전후 그리스 가객)의 신화 이야기, 철학자 플라톤(Platon, B.C 427~B.C 347)의 관념론, 로마 역사와 철학, 천동설(天動說)의 프톨레마이우스(Ptolemaeus,100~170년 전후)와 지동설(地動說)을 설파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1473~1543)의 천문론 등이 들어 있어 웬만한 일반 독자는 읽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밀턴은 저작권을 출판사 새뮤얼 시몬스에게 5파운드(2022년 기준 1000파운드)에 넘겼다. 초판은 18개월 만에 매진됐다.

르네상스를 연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신곡(Divina Commedia)’과 함께 서구 최고의 서사시 걸작(傑作)’로 분류된다. 후대 수많은 영화, 연극, 뮤지컬, 클래식,회화 등의 문화 텍스트로 다양한 명작을 남겼다. 실낙원은 가장 최근인 2019년 미국의 한 대학생이 9권 중간에 나오는 문장 8개의 앞 글자 ‘FFAALLAF’를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6글자는 아담과 하와가 쌍(FF)으로 떨어지면서(FALL)를 뜻하고, 뒤의 4글자도 거꾸로 읽으면 ‘FALL’이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밀턴은 속편 격인 복낙원(Paradise Regained,1671, 4)’도 썼다.

영국화가 스티븐 프랜시스 리고(Stephen Francis Rigaud, 1777~1861)가 1805년 경 그린 ‘아담과 이브 위에 있는 루시퍼(타락천사, 사탄)’,.밀턴의 '실낙원' IV권을 형상화했다. 미국 미네소타주 Minneapolis Institute of Art(미니애폴리스 예술 연구원) 소장. 출처=컬렉터스 펀드 그룹
영국화가 스티븐 프랜시스 리고(Stephen Francis Rigaud, 1777~1861)가 1805년 경 그린 ‘아담과 이브 위에 있는 루시퍼(타락천사, 사탄)’,.밀턴의 '실낙원' IV권을 형상화했다. 미국 미네소타주 Minneapolis Institute of Art(미니애폴리스 예술 연구원) 소장. 출처=컬렉터스 펀드 그룹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영국의 위대한 시인. 청교도 사상가. 17세기 영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최초로 (출판물)사전 검열을 맹비판한 언론 자유 신봉자로 유명한 저서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1644)’는 언론 자유 관련,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산문집이다.

런던의 브레드 스트리트(Bread Street)에서 강경 가톨릭 중산층 가정(아버지가 유능한 공증인)에서 출생, 템즈강 인근 세인트폴 학교(St Paul's School, 1509년 설립)와 케임브리지 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를 졸업했다.

밀턴은 의회파를 지지하는 공화주의자로 활동, 혁명가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의 적극 지지자였다. 1642년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이 발발하자 학문 활동이나 저술보다는 크롬웰의 청교도 정권과 왕정 폐지를 사상적으로 옹호하는 정치적 산문 기고와 강연 활동에 총력을 기울인다. 청교도 혁명은 16491월 대영국과 아일랜드의 국왕(King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찰스 1(Charles I,1600~1649)를 공개 처형하는 등 초기에 성공했다. 5개 언어에 능통했던 밀턴은 16493월 혁명정부 국무원에서 외국어 담당 장관으로도 활동한다. 이 때 너무 과로한 데다 잠을 안 자고 책을 읽고 글을 쓴 탓에 1652년 실명했다.

그런데 1660년 청교도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왕정복고(王政復古, Restoration)가 이뤄지면서 밀턴은 죽을 때까지 시련과 환멸의 연대를 보낸다. 돌아온 왕당파는 그해 5월 밀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그의 모든 저작물 소각에 들어갔다. 왕당파는 밀턴에 대해 정권 보위 나팔수의 다른 말인 체제 선전가(propaganda for the regime )라고 부를 정도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감된 밀턴의 처형을 추진했으나 동료 문학가의 적극 탄원과 이미 실명한 상태를 고려, 가산(家産)만 몰수당한다.

화가 헨리 푸젤리(Henry Fuseli,1742~1825)가 그린 존 밀턴과 아내. 밀턴 아내는 결혼직후 가출했는데 이를 소재로 그린 '밀턴 아내의 귀환(1798~1799)'이다.영국 리버풀 국립워커아트갤러리(Walker Art Gallery) 소장. photo by wikipedia
화가 헨리 푸젤리(Henry Fuseli,1742~1825)가 그린 존 밀턴과 아내. 밀턴 아내는 결혼직후 가출했는데 이를 소재로 그린 '밀턴 아내의 귀환(1798~1799)'이다.영국 리버풀 국립워커아트갤러리(Walker Art Gallery) 소장. photo by wikipedia

밀턴은 세 명의 여인과 공식 결혼했다. 첫 결혼은 17세 연하의 미인 메리 파웰(Mary Powell)과 했지만 원만하지 못해 이혼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딸 셋을 낳은 메리는 1652년 막내 딸이 태어난 후 출산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두 번째 부인 캐서린 우드콕은 딸 하나를 낳고 결혼 3(Katherine Woodcock, 1656~1658)만에 사별했다. 세 번째는 31년 연하의 엘리자베스 베티 민슐(Elizabeth Mynshull, 1638~1728)이었는 데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 당시 지인이 찾아와 사모님이 아름답다고 칭송의 말을 하자 밀턴은 장미처럼 아름답긴 하지. 말을 할 때마다 장미의 가시처럼 날 쿡쿡 찌르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밀턴은 1674118일 영면, 런던 국교회 관할 교회 세인트 자일스-위드아웃-크리플게이트(St Giles-without-Cripplegate)에 안장됐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밀턴은 영국의 영광과 경이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金池山, 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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