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북 안동은 아직도 '위험지대'다

자연재해 급증하는데 지상 전봇대 '천지'...안동 시민의 깊은 한숨

2019-11-26     안세준

"지난달 태풍 '미탁'이 경북지역을 관통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아차 싶더라고요. 저희 지역은 30m 간격으로 전봇대(가공선로)가 빼곡히 설치돼 있어요. 강풍에 전봇대가 훼손, 누전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경북 안동은 그야말로 안전 사각지대에요."

26일 오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주민 이창원(59) 씨는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역 주민들이 누전, 단락 OR 단선 등 각종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족 3명이 거주 중인 이씨의 집 근방(30m)에는 3대의 가공선로가 설치돼 있다. 전주당 380V의 전압이 흐르고 있다고 가정하면, 총합 1000V 이상의 전압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이씨는 "서울 등 주요 도심권이 전기 선로를 땅 속에 매설한 것(지중선로)과는 달리, 경북 안동 등 지역 농촌은 아직까지 가공선로를 고수하고 있다"며 "전류량이 낮아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태풍 등 각종 자연재해가 내륙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가공선로 방식이 옳은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호소했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주민 이창원(59) 씨가 자신의 집 앞에 설치된 가공선로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 안세준 기자.

"자연재해만 닥쳤다하면 장사 종료에요"...고심 깊어지는 지역 상인들

지역 상업인 역시 무분별한 가공선로 설치에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오후 1시께 만난 대동 슈퍼 관계자는 "속된 말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대부분의 전봇대가 낙후된 상태로 방치돼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특히 지난해 태풍(미탁·18호)이 경북 안동지역을 강타했을 땐 주변 전선이 누전, 안전요원이 긴급 출동하기도 했다"며 "태풍 피해 권역이 해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만큼 걱정이 크다. 전류의 누전은 곧 상인들에게 그날 장사를 마무리 지으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난잡한 전깃줄과 가공선로가 지역상권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산물 직판장을 운영 중인 농업인 최모 씨(익명요구)는 "매일 아침, 가게 정문을 바라보곤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며 "이곳에서 가게 정문을 직접 보길 바란다. 어떤 소비자가 안전한 농산물 매장이라고 생각이나 하겠느냐"고 전했다.

그의 가게 정문 양 옆에는 가공선로 2대가 설치돼 있다. 정적이 흐른 정문 근처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스파크 소리가 들리곤 한다. 전깃줄과 가공선로가 난잡하게 얽힌 모습은 흡사 거미집을 방불케 했다.

26일,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모 농산물 직판장 정문에 380V의 가공선로가 설치돼 있는 모습. 사진=안세준 기자.

안동시가 선로 설치, 유지 관리비 등을 절약하고자 가공선로를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 지역 주민도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로 안동 거주 30년 차라고 밝힌 이춘삼(66) 씨다.

그는 "지난 2016년부터 관공서에 '전선 지중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아직은 계획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거주 인구가 더 적은 충북 영동군조차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가공선로를 이어가겠다는 맥락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특히 오는 2020년부터 태풍의 내륙권 진입이 본격화된다는 기상청의 예측마저 있었던 만큼, 전선 지중화 사업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물이 엎질러진 뒤에는 무엇을 해도 늦다. 예기된 산업재해로부터 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세준 기자 to_serap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