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①] '이색자판기' 대중화 반열 성공했지만, "갈 길이 태산"

"자판기가 왜 여기에?"무분별한 배치로 소비 욕구도 '뚝'...협회 측 "관리 부실 오명 벗어야"

2019-10-28     차혜린

최근 즐길거리를 파는 어뮤즈먼트 자판기가 새로 개발되면서 자판기 산업이 대중화 반열에 올랐지만, 이내 부실한 관리로 또다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21일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는 자판기산업 내 문제의 심각성을 되짚었다. 40년의 역사가 넘어가도록, 자판기 산업의 체계적인 관리가 부재하다는 것. 협회는 향후 자판기 시장이 경제적 뿌리를 내리려면, 자판기 상품이 비위생적이고 관리가 부실하다는 오명을 하루빨리 벗어야한다는 입장이다.

1993년 자판기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국내 대기업만 7개사 시장이 참여했으며, 전도유망한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자판기는 점포 임대료 없이 1천만원 내외의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소자본 창업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건비가 들지 않으며, 상품만 제때 치우고 관리만 잘하면 알아서 24시간 동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최근에는 꽃다발 자판기, 스티커 사진기 등 이색자판기가 등장하면서 자판기 업계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는 전망이다. 그동안은 커피 산업 이후로 자판기만의 히트 상품이 없었지만, 이번엔 독자적인 상품을 도입한 자판기로 새로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포부인 셈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과 달리 국내 자판기 산업은 마이너스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에 따르면, 자판기 산업의 전성기였던 93년부터 98년까지는 1600억에서 1800억원대 기계 매출규모를 기록했으나, 2002년부터는 1000억대 시장이하로 급락해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커피 자판기조차 수익률이 3%~5%정도에 머무를 정도로 현재로서는 시장이 많이 위축된 상태라는 분석이다.

업계는 자판기의 무분별한 입점이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판기를 마구잡이식으로 배치해, 정작 구매자들의 편의성이나 상품성 측면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업계 관계자는 "자판기는 위치나 상품의 품질, 가격 등 관리에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다"면서 "그런데 이 점을 간과하고 소자본 창업가들이 유행을 따라 대거 유입했다가, 장사가 안되면 금세 철회해버리고 만다"며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부터 홍대에서 출발한 꽃다발 자판기는 오래도록 신선함과 향기가 유지되는 '드라이플라워'를 특성으로 한 이색 자판기로 이목을 끌었지만, 3년 만에 인기가 급격히 추락해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야구사격장, 가게 구석 한 편에 놓여있는 꽃다발 자판기. 차혜린 기자.

28일 기자가 찾은 5개 대학가 인근에는 꽃다발 자판기가 무분별하게 입점되어있는 모습이 발견됐다. 하지만, '꽃'이라는 제품 특성과는 달리 자판기는 편의점, 오락실, 고깃집, 인적이 드문 외딴 골목 구석에 발견된 것은 물론, 기기 주변에는 담배 꽁초나 빗자루 등이 널브러져있었다. 심지어 일부 자판기는 꽃을 전시한 유리관 내부에 먼지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날 꽃다발 자판기를 살펴보던 한 여성소비자 A씨는 제품을 구경하더니 멈칫하고 돌아섰다. 기자의 질문에 소비자 A씨는 "말로만 들었던 꽃 자판기를 실제로 보니까 새롭고 신선했다"면서 "그렇지만,굳이 드라이플라워를 담배 냄새 나는 오락실 옆에 설치하면 꽃다발을 누가 사갈까 싶다. 사실 그래서 나도 그냥 구경만 하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여기에 협회 측은 산업계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자판기 제품을 선정하고 품질을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협회 관계자는 "조사 결과, 소비자들 중 과반 이상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배치된 자판기들 때문에 제품이 비위생적이고 관리가 부실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면서 "자판기가 더이상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오명을 벗어야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산업계는 자판기 기계를 한 두대라도 더 보급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 그 기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판기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느냐 하는 부분에는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면서 "앞으로 산업계는 편리하고 깨끗한 자판기 문화의 선도를 위해 대대적으로 자판기의 입지를 재정비해야한다"고 전했다.

차혜린 기자 chadori9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