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철‘s 핀포인트] 빈병 공방이 불러온 주류전쟁
하이트진로・롯데주류, 빈 병 갈등…그 속엔 치열한 소주 쟁탈전
[핀포인트뉴스=박남철 기자] 국내 대표 주류업체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간 ‘빈 병 다툼’이 길어지는 분위기다.
하이트진로는 롯데주류에 쌓여있는 350만 병 가량의 빈 병을 수거하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다.
반면 롯데주류는 하이트진로가 10년간 이어져온 자율협약이 무색해졌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며 자발적 반납을 거부하고 있다.
한쪽은 잘나가는 시장 상황에도 수요를 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한쪽은 영업 부진의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빈 병 공방 이면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잘 나갔던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일본기업 제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판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롯데주류의 고전에 반사이익을 얻은 데다 뉴트로 제품인 진로이즈백의 판매량 호조에 빈병 수급이 절실한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왜 롯데주류는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빈병을 반납하지 않을까? 그 배경은 업체간 자율 협약이 빌미가 됐다.
각기 다른 형태의 녹색 소주병을 사용하던 주류업체는 10년 전인 2009년 하이트진로 ‘참이슬 녹색 병’(360㎖)과 같은 모양·크기의 표준 소주병을 제작하기로 자율협약을 맺었다.
보통 7~8회 재사용이 가능한 소주병 재활용률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업계는 빈 병 수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자원순환의 뜻에 합의를 했고 이후 병의 표준화로 상호 윈-윈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실제 헌 소주병을 세척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병당 50원으로 새 소주병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세척하지 않고 파쇄해 재활용한다면 150원이 든다.
소주병만 놓고 보자면 오늘은 참이슬인 소주가 내일은 처음처럼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통일된 녹색 병 대신 하늘색 투명한 병을 사용한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스백 제품이 나오며 상황이 돌변한다.
뉴트로를 표방한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은 녹색병이 아닌 하늘색이 도는 투명한 병에 디자인도 달라 처음처럼은 물론, 참이슬에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롯데주류로서는 '쓸모없는' 진로이즈백 빈병을 하이트진로에 돌려줘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롯데는 자율협약이 깨진 상황에 재활용도 어려워 다른 병을 선별해 돌려주는 과정에서 인건비, 물류비 등 비용이 발생한다며 반환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까닥이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다른 업체가 녹색 표준병 외 투명한 비표준병 소주(무학 ‘좋은데이1929’, 대선주조 ‘고급소주’, 금복주 ‘독도소주’ 등)를 판매하는데 롯데주류가 유독 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만 문제 삼는다고 반발한다.
또 해당 협약은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돼 있어 강제성이 없고 하이트진로는 이미 월 1억5000만병 넘게 팔리고 있는 ‘참이슬’을 통해 소주 공병 재활용에 업계 최고 수준으로 기여했다는 입장이다.
주류업계를 이끄는 두 공룡의 팽팽한 기싸움에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른 시간에 문제해결이 안될 경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싸움이 함의하는 바도 크다.
향후 다양화되는 소비자 취향에 맞춰 새로운 소주가 새 병에 담겨 나온다면 지금의 경험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문제해결을 위해 환경부가 조정안을 내겠지만 소주병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제조사 사이에 필요해 보인다.
이제는 공용 디자인만을 고집하기보다 상호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모쪼록 합의에 이르길 바란다.
박남철 기자 pnc401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