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매운동에도 끄떡없던 日담배
"그거 가방에 넣고 다니라니까?"
지난 3일 서울 고속터미널역 3번 출구 근처 흡연 부스 안. 한 남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친구(여성) 목에 걸린 카메라가 원인이었다. 카메라 목줄에는 'NICON(니콘·일본 카메라업체)' 이라는 브랜드 로고가 적혀 있었다. 남성은 "요새는 특히 일본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주의해야 된다"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그걸(일본 불매운동) 지지하고 있다" 고 말했다.
여성이 가방 안에 카메라를 넣는 모습을 확인한 남성은 그제서야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가 꺼내 든 담배는 일본 담배 회사 JTI(Japan Tobacco International)의 '카멜' 이었다. 남성은 "그러고보니 최근 2년 간 일본 제품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이전부터 우리를 업신 여기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며 긴 설교를 이어갔다.
JTI 담배, 편의점 판매량 8% 대 유지...보이콧 타격 미미
'보이콧 재팬'의 영향으로 유니클로, 아사히 맥주 등 일본 기업의 매출량이 급감한 반면, 담배 제품군의 영향은 미미했던 모양이다. 편의점 판매 기준으로 지난 8월 중순 7% 수준인 일본 담배 점유율이 지난달 중순 8%대로 반등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메비우스'(옛 마일드세븐)와 '카멜' 등을 파는 JTI의 국내 점유율은 평균 8% 대 선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 불매 운동 타격이 크지 않았을 뿐더러, 감소율마저 금세 제위치를 되찾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비자들이 담배 제조국을 인지하지 않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담배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호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제조 브랜드와 국가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내 흡연자들은 자신이 애용하는 담배의 브랜드와 제조 국가에 무지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 최민호(29)씨는 "제대 이후 '아프리카 룰러' 담배를 수년간 이용해 왔다"면서도 제조 브랜드와 국가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엔 "브랜드명은 아프리카, 제조국은 미국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프리카 룰러는 국내 담배 브랜드 KT&G가 자체 개발한 상품이다.
담배를 유통·취급하는 편의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고속터미널역 인근에서 편의점 CU를 운영 중인 점주 A씨는 유통 중인 일본 담배가 몇 종인지 묻는 질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며 "보통 담배는 제조국을 잘 모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고속터미널역으로부터 10분 남짓 거리 흡연존에서 만난 김태형(30) 씨는 담배의 경우 주변 시선을 덜 의식해도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담배의 개비 겉면만 보고 브랜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자신이 애용해 온 담배를 거부감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불매 운동이 장기적으로 접어들기 위해선 군중심리 즉, 따끔한 주위 시선이 적용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담배는 개비 겉면이 비슷해서 어느 브랜드인지 확인이 어려울 정도다. 만일 담배 개비에 빨간색 원 형태의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일본의 한국 경제 규제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관심을 갖고 불매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며 "화장품, 의상 등 눈에 띄는 제품군에 한정될 게 아니라 기호식품 범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세준 기자 to_serap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