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이콧 재팬'에 방문객 뚝...일식전문점의 깊은 한숨

2019-09-14     이승현

[핀포인트뉴스=이승현 기자] 14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음식문화특화거리. 트렌디한 복장 차림의 두 남녀가 주위를 살핀다. 인근 식당과 술집을 하나 하나 훑으며 갈 곳을 찾던 이들은 결정을 내렸다는 듯, 특정 상가 건물로 향했다.

"아니, 잠깐만. 여기 일식집인데?"

건물 입구로 들어서던 여성의 팔을 남성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해당 매장 간판엔 알 수 없는 가타카나(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두 가지 문자 중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남성은 "여기말고 다른 곳 가는 게 좋겠다. 시국이 시국인데 가면 안되지"라며 여성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이들이 떠나고 홀로 매장 입구에 서 있기를 2분. 거리를 지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일본식 간판을 확인하곤, 곧장 매장 입구에 서 있는 기자를 곁눈질 했다. 매장 입구에 서 있다는 것 만으로 면박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보이콧 재팬 운동이 장기화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 속, 실제 국내 일식전문점들은 어떤 상황일까. 매장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가게 월세까지 밀린 일식전문점..."우리도 같은 한국인인데..."

"어서오세요. 일행이 몇분이신가요?" 가게 문을 열자 누군가 달갑게 맞이했다. 매장 점주 이모(42) 씨 였다. 그는 "보시다시피 자리가 많이 남는다. 편하신 자리에 앉으시면 된다"고 말했다.

매장을 돌러보니, 방문 손님이 3~4명 남짓에 불과하다. 테이블 위로 설치된 대다수 조명들은 텅 빈 의자만을 비추고 있었다.

일본식 풍경을 도입한 서울 구로구의 한 일식전문점. 테이블 위로 설치된 은은한 조명이 텅 빈 의자를 비추고 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20여 분 뒤, 빈테이블에 힘 없이 주저 앉은 이씨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월 별 매장 결산서였다. 볼펜을 짚은 이씨는 고심이 깊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씁쓸할 뿐이죠. 저희가 일본인은 아니잖아요. 내일모레면 아내 생일인데..."

최근 매출 상황이 어떤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이같이 말했다. '보이콧 재팬'이 장기화되면서 매출이 급감한 탓이다. 그는 "지난달에만 매출액이 45% 가량 떨어져 가게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소비자들이 우리도 같은 한국인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일본식 술집도 방문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말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매장에선 의외의 맬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케이팝(K-POP)이었다. 매장 점주 최모(49)씨는 "원래 일식점은 가게 컨셉 상 음악을 잘 틀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손님을 끌어들일 수가 없기에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식 식당과 매장을 운영하는 대다수의 사업주들은 한국인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심경을 공감하고 있기에 불매 운동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일부분에선 억울한 심경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현 기자 shlee430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