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이어 특허 공세…美 시장서 견제 받는 K-가전

철강 제품 50% 관세 확정되며 원가 부담 커져 특허 분쟁 증가·시장 규제 변화 등 불확실성도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 시장 공략으로 돌파구 모색

2025-11-24     손예지 기자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가전업체들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챗 GPT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가전업체들이 흔들리고 있다. 철강·파생상품 고율 관세가 유지된 데다가, 현지 기업의 견제와 보조금 축소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0% 철강 관세 확정, 美 가전 수출에 '직격탄'

24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달 말 경북 경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관세 협상 내용을 문서화한 팩트시트를 14일 발표했다. 이에 미국이 지난 4월부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적용해온 50% 고율 관세가 확정됐다.

문제는 해당 규제가 철강뿐 아니라 변압기·가전·볼트·너트 등 400여 개 파생상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통상 냉장고·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은 구조물과 프레임 등 원가에서 철강 비중이 약 30~40%에 이르는 만큼, 제조원가 상승과 함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국내 가전업체들의 우려가 큰 이유는 미국 수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KOTRA(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전의 대미 수출액은 30억8000만달러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두 번째 수출 시장인 일본(4억6000만달러)의 약 7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큰 만큼 관세의 영향도 즉각적으로 실적에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 사업부에서 100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2023년 4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TV 사업을 담당하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MS) 사업본부에서 3026억원 적자를 내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美 기업 견제까지 거세지며 ‘소송 리스크’ 확대

미국 현지 기업의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조리와 환기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자사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고, 관련 전자레인지 제품의 미국 수입·판매 금지를 요청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미국 내수 시장에서 뒤처진 점유율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올 1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가전시장 점유율 합계는 약 36%로, 월풀(약 20%)을 크게 앞선다.

이처럼 현지 견제가 거세지면서 특허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특허 소송은 97건으로, 전년 대비 15% 늘었다. ITC 절차는 조사 개시부터 예비 판정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 활동 위축과 경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책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규모 감세 법안(OBBBA)을 시행하면서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운영하는 고효율 가전 인증 제도 ‘에너지스타’가 폐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현재 에너지스타 인증 냉장고·세탁기에는 25~150달러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데, 제도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프리미엄 제품 경쟁력이 높은 국내 가전업체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인도·베트남·중동...신흥시장으로 돌파구 찾는다 

관람객들이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삼성 BKC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AI 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기업은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 개발도상국)'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장성이 큰 신흥 시장에서 수요 기반을 넓히고, 공급망을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 최대 공조업체 플랙트를 인수하며 HVAC(냉난방공조) 사업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동 대형 주거 단지와 리조트, 의료센터 등을 중심으로 B2B(기업 간 거래) 수주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인도·베트남 스마트폰 및 가전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인도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과 개발 체제를 현지화하고 있다. 지난 5월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시티에 세 번째 가전공장을 착공했으며, 이달 인도 법인을 현지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등 현지 사업 기반을 강화했다. 향후 R&D(연구개발) 센터 설립과 함께 중동·남아시아 등으로 공급망을 확대해 시장 중심의 대응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고율로 유지되는 한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수익성 방어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책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만큼 가격·생산 전략 재조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