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직접시행 재개발 ‘수용 방식’ 추진에…“재산권 침해” 반발 확산

“속도·공급 확대” 명분 문재인 정부 2·4 대책과 동일…실패 반복 우려 핵심은 ‘속도·보상·신뢰 회복’

2025-11-21     전수민 기자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주민과 업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공공이 토지를 수용해 재개발·재건축을 직접 시행하는 방식이 사실상 재산권 침해이자 민간 정비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성·속도·주민 동의 확보’라는 핵심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이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2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등 공기업이 정비사업을 직접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공공이 정비구역을 수용해 건축물을 짓고, 이를 기존 소유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방식을 주요 골자로 한다.

민간 정비사업이 조합 갈등, 시공자 유착, 이해관계 충돌 등으로 장기화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신속한 주택 공급과 집값 안정을 이루겠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개정안에는 ▲주민 동의율 기준 ▲사전협의 절차 ▲용도지역 상향 및 용적률 완화 특례 ▲시공자·감정평가업체 추천 절차 ▲우선공급 원칙 등 사업 속도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대거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9·7 공급 대책의 핵심 축으로 삼고, 공공이 참여하는 새로운 정비사업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비업계와 주민 반응은 싸늘하다.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는 일주일 만에 7000건, 열흘 만에 1만30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가장 큰 반발 이유는 소유권 이전·수용 방식이다. 공공이 토지를 수용하는 순간 주민은 사실상 사업 통제권을 잃고, 개발이익 배분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 재개발 구역의 한 토지 소유자는 “내 땅을 공공이 가져가 짓는 재개발이라면 결사 반대”라며 “공공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 같은 공공성 목표가 우선인데 개인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겠느냐”고 격노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도 “신탁 방식에서도 갈등이 많은데 공공이 조합의 역할을 대신하면 이해상충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제도가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4 대책’ 때의 공공 직접시행 모델과 유사하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당시에도 공공 주도 정비사업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보상 문제, 수용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 수용은 3기 신도시에서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비구역처럼 소유자가 많고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에서는 수용 단계에서부터 사업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21년 당시 도심복합사업이 그나마 추진력을 얻었던 것은 민간 정비사업이 각종 규제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민간 정비사업이 활발해진 상황이라 공공시행의 매력도는 오히려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 중심 공급을 시도하는 이유는 개발이익을 분배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며 “민간 정비사업이 활성화하고 있는 지금 공공사업을 택할 이유가 없다보니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잡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일부 도심복합사업 참여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전체 정비시장에 도움이 된다”면서 공공의 특례가 민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