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3사 '비상경영'...인력감축ㆍ비용절감ㆍ신사업 등
SK브로드밴드ㆍLG헬로비전ㆍKT스카이라이프 희망퇴직·본사이전·자산매각 등 허리띠 줄라매기 LG 노조 첫 파업 강력 반발...타사 노조들도 참석 非방송분야 신사업 진출추진 등 사업다각화 모색 SK-AI 데이터센터, LG-가전렌탈, KT-스포츠 중계 업계 “전통 채널 중심 모델 한계…체질 전환 필요”
국내 유료방송업계가 가입자 감소와 매출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 시청 행태가 굳어지며 시장 경쟁력이 약해진 가운데, 사업자들은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 신사업 확장 등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료방송 3사(SK브로드밴드·KT스카이라이프·LG헬로비전)는 비용 절감을 위해 희망퇴직 실시와 사옥 이전 등 조직 효율화에 나섰다.
SK브로드밴드는 50세 이상 또는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달 말 퇴사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며, 최대 5억원의 명예퇴직금과 자녀 학자금 등 복지 지원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경영환경 변화와 구성원들의 니즈를 감안해 시행한 것”이라며 “인원 목표나 강제성은 없고, 모든 절차는 자율 신청 기반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LG헬로비전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근속 5년 미만은 6개월치, 20년 미만은 24개월치, 20년 이상 직원에게는 최대 30개월치 급여가 지급된다. 이와 함께 오는 12월 서울 상암 사옥을 정리하고 경기도 고양시로 본사를 이전해 고정비 절감과 운영 효율화에 나선다.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해 12월 희망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콘텐츠 투자 전략도 조정하고 있다. 자회사 ENA의 설비투자(CAPEX)를 축소해 무형자산 상각비를 낮추고, 드라마 중심이었던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예능 중심으로 재편하며 투자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그간 ENA가 무형자산으로 계상해온 콘텐츠 투자 규모가 컸던 만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터져 나오고 있다.
LG헬로비전 노동조합은 지난 17일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했다. 임금교섭이 11차례 진행됐음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데다, 본사 이전과 희망퇴직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판단에서다.
노조는 지난 17일 열린 결의대회에서 “사옥 이전과 희망퇴직에는 수십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최근 몇 년간 신규 채용이 전무한 상황에서 업무 강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서비스 품질 저하까지 우려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일 사업장의 문제뿐 아니라 유료방송 산업 전반에 쌓여온 불안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결의대회에는 KT HCN, SK브로드밴드 등 다른 통신·케이블 노조들도 참석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유료방송 가입 가구 비율은 2023년 92.5%, 2024년 91.9%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OTT 이용률은 같은 기간 77.0%에서 79.2%로 상승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조사에서도 유료방송 해지 이유 가운데 ‘OTT 이용 증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유료방송사 수익도 직격타를 맞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방송사업 전체 매출은 18조8042억원으로 전년보다 0.9% 감소했다. 방송사업자 전체 영업이익도 2조1999억원으로 전년 대비 26.7% 줄었다. IPTV 영업이익은 1조616억원으로 35.9% 감소했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영업이익은 148억원으로 76.5% 급감했다.
개별 사업자 실적도 예외는 아니다. KT스카이라이프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3.9% 감소한 2469억원, LG헬로비전은 7.7% 줄어든 2984억원을 기록했다. SK브로드밴드 역시 유료방송 매출 감소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실적 부진의 배경으로 시청 행태 변화를 가장 먼저 꼽는다. 편성표에 맞춰 TV를 켜야 하는 방식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보는 패턴이 일반화되면서 전통 유료방송의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모바일 시청 확대와 1인 가구 증가도 유료방송 의존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글로벌 OTT에 비해 불리한 규제 환경도 문제로 꼽힌다. 유료방송은 지상파와 거의 같은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아 7년마다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기업의 자율성과 투자 여력을 제약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의원 등 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공석 등으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료방송 3사는 생존을 위해 비(非)방송 분야로의 사업 다각화를 서두르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된 뒤 AI 데이터센터(AIDC)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해 7월 AI 스포츠 중계 솔루션 기업 ‘호각’에 약 68억원을 투자했으며, LG헬로비전 역시 계절가전 렌탈과 교육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시청 방식이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유료방송이 선택지를 넓히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통신사와의 시너지, 지역 밀착형 서비스, 데이터 기반 개인화 등 기존에 없던 방향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곳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