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구조개편안 마련, 해 안 넘긴다"…지원 입법 속도에 업계 분주
정치권, 제조업 입법 고비 넘겨…전체회의·본회의 절차 남아 있어도 기대감 ↑ M&A 심사 단축·산단 협력 활성화 등이 골자…구조조정 속도 높이는 지원책 석유화학 업계, 수출 급감·위기감 여전…현장에서도 재편안 움직임 보여 임박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 개편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석유화학산업 특별법) 국회 처리의 주요 문턱을 넘은데 따른 영향으로 해석됐다.
20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전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석유화학산업 특별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업계가 당초 예고한 구조개편 경쟁에 발 빠르게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입법이 불투명하면서 정부와 업계의 당초 약속과 달리 연내 구조개편안 마련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업계가 입법 지연을 핑계로 구조개편에 적극 나지 않고 버티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돌았다.
아직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의결, 본회의 처리 등 절차가 남아 있지만 여야가 제조업 위기극복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안이 오는 26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됐다.
석유화학업계 구조개편에 금융 및 세제 등을 지원하는 입법에 속도가 붙으면서 석유화학 업계는 당초 공언대로 해를 넘기지 않고 자율 구조조정과 대형 사업 재편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법안이 사실상 입법의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로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 업계가 장기 불황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회가 기업 자율 구조조정을 촉구하며 진정성 있는 자구 계획을 전제로 제한적 지원과 규제 완화를 검토하려는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법안 심사소위 통과는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와 전남 여수산단(LG화학·GS칼텍스) 등에서 물밑 논의 중인 대형 사업 재편이 연말을 기점으로 본격화되는 결정적 '촉매제'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 급감과 나프타 분해 설비(NCC) 가동률 저하로 장기 불황에 직면한 석유화학 업계가 법안 통과로 대형 NCC 통폐합과 자율적 구조조정을 올해 안에 신속히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산자위 법안소위원회가 전날 석유화학산업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이는 단순한 절차 진행을 넘어 입법의 가장 큰 고비를 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상임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라는 후속 절차가 남아 있지만 통상적으로 여야 쟁점이 치열한 법안들이 소위 문턱에서 좌초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연내 통과가 유력해진 셈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처럼 이례적인 속도전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미국의 관세 장벽 강화라는 '이중고'가 자리하며 전통 제조업 위기 속 국회가 입법 시급성을 느끼고 '제조업 패키지 지원'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됐다.
업계는 이번 법안 통과로 구조조정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정부가 NCC 감축을 권고해 온 상황에서 이번 법안이 업계가 구조조정 관련 논의를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데 따른 것이다.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도 포함됐다. 해당 법안 내용을 살펴 보면 기업결합(M&A)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해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였다. 아울러 같은 산업단지 내 기업 간 재편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산업단지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빅딜' 추진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준 것으로 풀이됐다.
그 외에도 ▲R&D(연구개발)·설비투자 보조금 지원 ▲환경규제 및 회계기준 특례 ▲전문인력 양성정책 수립 ▲사업재편 과정의 노동자 보호 ▲지역경제 충격 최소화 대책 등 전방위적 지원 방안 이 담겼다.
현재 석유화학 업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화학 수출액은 전년 대비 22% 급감했다. 수익성 지표로 알려진 에틸렌 스프레드는 손익분기점(300달러)을 한참 밑도는 2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버티기' 전략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이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 현장의 움직임은 이미 일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 대산단지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설비 통합을 골자로 한 '1호 사업 재편안' 확정이 임박했으며 여수단지의 LG화학과 GS칼텍스 역시 통합 컨설팅에 착수하는 등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업계는 이번 법안 소위 통과를 기점으로 그동안 눈치만 보던 구조조정 논의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설비 통폐합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화학산업전문가협회 박현길 박사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측이 먼저 NCC 통폐합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어려움을 얼마나 빠르게 타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이어 "NCC 통폐합이 이뤄지면 업체 간 효율 개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국과 중동이 자체 공정을 대거 확충하고 있어 근본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불리한 것이 현실"이라며 "전체적인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홍석 장르만케미칼 대표(장기 재고 해결 플랫폼 '떠리마켓' 운영)는 이날 "정부가 세제지원을 확대하더라도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근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답이 없다"며 "세제지원 이후를 대비한 추가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이어 "우리나라는 정밀화학 기술력이 부족해 자체 기술보다 라이선스를 들여와 공장을 짓는 구조"라며 "기술을 개발하려면 실제 공장이 필요한데 폐수 처리 등 규제가 많아 R&D 기반을 갖추기 어렵고 결국 중국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의결된 법률안들은 21일 예정된 산자위 전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이르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8월 산자위 간사인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등 13인이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