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남 사는 대기업 김 부장의 고백

2025-11-13     조철현 기자
조철현 부국장(경제부장)

강남에 사는 대기업 부장 김모씨(52). 요즘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넘쳐난다. 올해 들어 부쩍 오른 집값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매입한 전용면적 84㎡(34평)짜리 대치동 아파트는 1년도 지나지 않아 10억원 넘게 올랐다.

정부가 한 달 전 대출 규제 강화와 규제지역 확대 등을 담은 10·15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 아파트 매매시장이 당분간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그동안 오른 집값을 생각하면 걱정할 일도 아니다.

이웃 주민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와 양도소득세 중과라는 초유의 '세금 폭탄'도 견뎠는데, 이 정도 규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다.

더구나 ‘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10·15 대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김씨의 아파트값은 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3중 규제’(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로 묶이면서 이미 규제에 익숙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가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때 강남 아파트를 사길 잘했다. 실제로 강남에서 살아보니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바둑판처럼 정돈된 도로와 촘촘히 연결된 지하철 노선, 풍부한 생활편의시설, 잘 갖춰진 교육 인프라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재명 정부가 들썩이는 서울·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출범 한 달도 안돼 ‘대출 최대 6억원 제한’이라는 고강도 대출 규제 카드를 꺼냈을 때만 해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덜컥 겁도 났다. 괜히 무리해서 강남 집을 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대책 발표 이후 김씨 아파트 매매가격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뛰어올랐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아챘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모자라면 가격은 오른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살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떠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동네 집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강남이 좋은 사례다. 강남에 살고 싶어 하는 수요는 넘쳐나는데 이들을 끌어안을 만한 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집 지을 빈 땅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재건축·재개발밖에 없다. 최근 10년 동안 서울에서 새 아파트 10채 중 7채는 민간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됐다고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확대 지정으로 가격을 낮춘 아파트 매물이 쏟아지고 시세도 내릴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강남 주요 아파트 단지엔 매물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정부가 “여긴 오를 곳”이라고 좌표를 꼭 찍어준 데다, 다주택자들이 다른 지역 집은 팔아도 ‘똘똘한’ 강남 아파트는 움켜쥐고 내놓지 않아서다.

전셋값도 많이 오를 것 같다. 토허구역에선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를 못하고 실거주해야 해서 전세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아파트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월세시장은 또 어떤가.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민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거 사다리도 끊겨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 같다.

이런 마당에 재건축 규제 대못으로 꼽히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법안과 재건축 단계를 줄여 사업 속도를 높여줄 이른바 ‘재건축 촉진법’이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김씨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재건축이 막혀 공급이 줄면 강남 집값은 앞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부가 보유세(재산세+종부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도 김씨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세금이 오르면 집주인은 그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고, 이는 결국 임대료 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월셋값이 오르면 매매가격도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때 실감나게 경험한 일이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있는데다 주택 공급(입주) 가뭄 가능성까지 있는 것도 김씨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게 집값을 끌어올릴 것이 뻔해서다.

김씨는 오래전부터 깨달은 게 있다. 부동산 규제가 특정 지역을 겨냥할수록 그곳 집값은 더 오르고 지역 양극화만 부추긴다는 사실을.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단행된 양도세 및 취득세 중과 등 다주택자에 대한 ‘핀셋 규제’가 되레 ‘똘똘한 한 채’ 열풍을 부추기면서 서울과 지방, 강남과 비강남 집값 격차만 더 벌려놓지 않았던가. 그래서 김씨는 정부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발표하는 부동산 대책을 좀 더 자주 내놓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이다.

마지막으로 결심 한 가지. 김씨는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특정 지역 집값 잡기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정당 추천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