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부동산 안정인가
정부가 또다시 수요 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가주택 대출 규제 강화, 다주택자 세 부담 유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등 "시장에 더는 움직이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거래는 얼어붙고 시장은 숨을 죽였다. 통계상 집값 상승률은 둔화됐지만, 그것이 곧 주거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집을 살 수도, 전세를 구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서민과 실수요자들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숫자상 안정이 삶의 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
정부는 '투기 수요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과도한 규제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실수요자들이다. 대출이 막히면서 젊은 세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고, 공급 지연으로 전월세 시장은 다시 요동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전년 대비 15% 감소했고, 전세가율은 70%를 넘어섰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꺼리면서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쯤 되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가 떠오른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도토리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화를 냈고,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로 바꾸자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총량은 같지만 눈앞의 변화에만 속았다는 뜻이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꼭 그렇다. 집값 상승률이 둔화됐다고 발표하지만, 실수요자들이 집을 살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대출은 막혔고,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 부담만 늘었다. 통계는 '안정'을 말하지만, 국민의 주거 불안은 오히려 커졌다.
반면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가들은 여전히 움직인다. 최근 서울 한 재건축 단지에서는 현금 매수자들이 대거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규제로 만들어진 건 공정한 시장이 아니라 얼어붙은 시장이다. 부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조삼모사의 원숭이처럼, 국민은 통계의 숫자놀음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정부가 말하는 부동산 안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통계표의 그래프가 낮아진다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가격 하락이 아니라, 살 수 있고 살기 좋은 집이 늘어나는 것이다.
수요 억제 방식은 시장 균형을 왜곡할 뿐 아니라, 향후 반등의 불씨를 키우는 위험한 선택이다. 과거 정부들의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이 단기 효과 이후 더 큰 집값 폭등을 불러왔던 전철을 우리는 이미 겪었다.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눌릴 뿐이다. 규제의 댐이 터지는 순간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건 투기와의 전쟁이 아니라 시장 정상화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주거 안정을 원한다면, 공급의 물꼬를 트고 실수요자가 안심하고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 역세권 재개발 활성화, 청년 주거지원 확대 등 구체적인 공급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단기 수치에 매달린 정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부를 위한 정치일 뿐이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10년, 20년 후 이 나라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주거 정책이 절실하다. 정부는 이제 집값 그래프가 아니라 국민의 얼굴을 봐야 한다. 조삼모사의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