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제왕 테더, 이제 ‘비트코인 큰손’ 됐다

2025-10-01     지선희 기자
비트코인. 사진=AP 연합뉴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가 비트코인 매입 규모를 또 한 번 확대했다. 이번 매입 규모는 무려 10억 달러에 달하며, 이로써 테더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100억 달러에 육박하게 됐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테더의 공격적 행보가 가격 안정성 확보와 동시에 새로운 투자 전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현지시간)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 아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최근 ‘Tether: Bitcoin Reserves’라는 지갑 주소에서 대규모 비트코인 입금이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테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래소 비트파이넥스로부터 8889개의 비트코인이 테더 지갑으로 이체된 것이다.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하면 테더의 전체 비트코인 보유량 가치는 약 97억 9천만 달러 수준이다. 이는 연초부터 이어져온 매입 행보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충전으로 꼽힌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테더가 단순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넘어, 비트코인 시장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 투자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테더는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T 발행사다. 이 회사는 전통적으로 달러 등 현금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왔지만, 최근 몇 년간 준비금 운용 전략을 다각화하면서 비트코인 매입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디지털 자산의 안정성과 가치 보존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테더의 전략은 단순한 ‘리스크 관리’를 넘어선 일종의 투자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운용사 관계자는 “테더가 비트코인을 대규모로 매집하면 시장의 유동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암호화폐 투자 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테더의 매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는 결국 준비금 자산에서 비롯되는데, 테더가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하면서 가격 상승 가능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유동성 운용의 자율성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시장이 급락하면 테더의 준비금 가치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분석가 앤서니 포모아노는 “테더가 보유한 비트코인 규모가 1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은, 한 기업이 비트코인 시장 가격 형성 과정에서 막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이는 긍정적인 안정 효과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장 왜곡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매입은 단기적으로 비트코인 수급 상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8889개의 비트코인이 일시에 테더 지갑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에서는 공급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매입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소폭 상승세를 보였으며, 향후 대규모 매입이 이어질 경우 ‘테더 효과’가 가격 변동성의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관계자는 “테더가 보유량을 늘릴수록 시장은 그만큼 테더의 움직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향후 10만 달러선을 돌파할지 여부에도 테더의 투자 전략이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더는 오랫동안 불투명한 준비금 공개 문제로 각국 규제당국의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분기별 재무 현황을 공개하며 신뢰 회복에 나서는 한편, 준비금 운용 다변화 전략을 통해 기존의 논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비트코인 매입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테더가 단순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사실상 ‘그림자 중앙은행’과 같은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본다.

이번 매입은 테더의 자산 운용 전략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