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억대 성과급 시대의 그늘
일은 적게 하고 보상은 많이 받는 게 세상 직장인들의 바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놀고먹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근로자의 그런 심리를 채워줄 기업은 찾기 어렵다.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들도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보상에는 반드시 대가가 뒤따른다. 수고나 책임의 결과가 직장인들의 월급 봉투 두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이치와 같다.
바야흐로 성과급 풍년시대다. ‘성과급 잔치’는 더 이상 금융권에서 듣는 얘기가 아니다. 금융권이야 ‘이자장사’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노조에 옴짝달싹 못 하는 구조에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이제 민간 대기업에서도 대규모 성과급 지급이 낯설다고 할 수 없다. 풍성한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주요 대기업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속속 타결되고 있다.
그 결과를 뜯어보면 대체로 물가 상승률(2024년 2.3%)을 넘는 기본급 인상에 더해 두둑한 성과급까지 제공된다. 자사 주식이나 상품권 등 다른 선물들도 듬뿍 안겼다.
우리나라 반도체 간판기업인 SK하이닉스가 최근 직원 1인당 평균 억대 성과급 기록을 세웠다. 모든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며 주목을 받았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성과급 만으로 연간 회사 영업이익의 10%를 나눠 갖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규모는 상반기 16조6000억원이었다. 올해 전체로는 4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단순 계산하면 그 10%인 4조원이 기본 연봉 외 성과급으로 지급된다는 뜻이다.
이 회사의 성과급 지급 기준 ‘영업이익의 10%’는 당초에도 있었다. 다만 성과급 지급 한도가 연봉의 최대 50%(기본급 1000%)로 제한됐다. 그런 성과급 상한선이 이번에 완전히 사라졌다. 노조는 올해 노사협상 타결 전 회사측의 절충안 제안을 거절했다.
그 절충안은 성과급 상한선을 기본급 1000%에서 1700%로 올려 성과급을 지급하되, 그래도 영업이익의 10%인 성과급 재원 중 남으면 그 절반을 직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아무런 걸림돌 없이 영업이익의 10%를 온전히 성과급으로 받게 됐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은 올해 임금 6% 인상과 별도로 받는 덤이다. 임금 인상률 6% 자체도 낮지 않다. 올해 정부가 예상한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2%의 3배이고 지난해 물가상승률의 2배를 넘는다. 성장률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0.9%의 무려 6배다.
자동차 대표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성과급 규모도 작지 않다. 지난 9일 어렵사리 타결된 노사협상 결과 이 회사의 성과급은 ‘450%+1580만원’이다. 현대차 노사 합의안에는 이 성과급 뿐만 아니라 월 기본급 10만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주식 30주 및 재래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등도 포함됐다.
기본급 등 평균 월 통상임금이 400만원이라면 성과급과 주식보상을 포함해 직원 1인당 4000만원 가량 받게 된다고 한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직원 6만3000명에게 지급될 금액은 총 2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상반기 현대차 연결순이익 6조6326억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현대차를 시작으로 속속 타결된 기아, 한국GM 등 자동차 업계의 성과급도 대략 비슷했다.
앞서 올 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본급의 710%에 더해 일시금 500만 원을, 현대로템은 기본급의 500%와 일시금 1800만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대규모 성과급 지급은 일종의 착시다. 실적이 좋은 일부 대기업에 국한하기 때문이다. 기업 전반의 임금인상은 대기업의 성과급 지급이 이끌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최근 발표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5년 상반기 규모·업종별 임금인상 현황 분석’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지난 1~6월 상용근로자의 월 평균임금 총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올랐다. 이 임금을 항목별로 보면 기본급 등 정액급여가 2.9% 오르는 동안 성과급 등 특별급여가 무려 8.1% 상승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월 평균 임금 총액 격차가 246만원이었다. 300인 이상 사업체가 619만9000원, 300인 미만 사업체는 373만9000원이었다. 지난해 동기 대비 임금 상승률을 보면 대기업이 5.7%로 중견·중소기업 2.7%의 2배를 넘었다.
대기업의 높은 임금 수준은 요즘 가파르게 늘어나는 성과급의 영향이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임금을 정액급여와 성과급 등 특별급여로 나눠보면 그 차이가 뚜렷했다. 대기업의 정액급여와 특별급여의 상승률은 각각 3.4%와 12.8%였던데 비해 중견·중소기업은 2.6%와 3.0%였다. 특히 특별급여에서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차이가 컸다.
성과급은 실적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면 직원들에 성과급으로, 주주에겐 배당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SK하이닉스의 억대 성과급도 사실 역대급 실적에 대한 직원 보상이다.
실적에 대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조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게 현대 기업 경영의 기초다.
기업의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은 솔직히 국가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또 장려할 만한 일이다. 기업에서 성과급을 많이 줘 특히 엔지니어를 우대하는 것은 우수한 인재를 재배치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판받는 대학 입시생들의 의과대학 쏠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치열한 글로벌 인재 유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성과급 지급을 반드시 긍정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 후폭풍이 거세다. 부작용들도 이미 드러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공무원들의 엑소더스다. 대기업의 많은 연봉을 쫓아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직 이탈이 줄을 잇는다.
취준생들의 대기업 선호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대기업에 가기 위해 취업 재수·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기업 고시’란 말도 생겨났다. 억대 연봉의 대기업 ‘킹 생산직’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이다. 중견·중소기업은 외면하고 오로지 대기업 취업에만 목을 맨다.
하지만 대기업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성과급을 포함한 직원 연봉이 늘어나자 우선 비용 감축을 위한 청년 채용 줄이기를 시작했다. 좋은 청년 일자리 축소는 불가피하다. 급기야 대통령의 요청으로 삼성 등 일부 대기업들이 같은 날 일제히 신입사원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영 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일할 의사도 없이 그냥 쉬는, 고용통계에서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이들 비경제활동인구 청년이 무려 40만명에 달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연간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성과급을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는 다른 기업 직원들의 위화감도 문제다. 이윤 추구가 기본 목적인 민간 기업의 수익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그 기업의 몫이다. 사회 질서 유지의 책임감까지 민간 기업에 떠넘길 순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대기업 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비롯해 성과급 지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기업 직원들의 박탈감, 공허함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그룹 내 조직, 나아가 전체 사회의 화합과 통합에 방해 요소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ESG 경영에 집중하는 기업으로선 다른 기업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성과급이 많다는 것을 자랑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기업의 수익을 지나치게 많이 성과급으로 나누면 성장 잠재력을 헤칠 수 있다. 투자는 사람에만 하는 게 아니다. 미래 성장을 위해 설비·연구개발 등에 돈을 써야 한다. 어려울 때를 대비해 우산을 챙겨놓듯이 말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성과급 지급이나 배당을 하지만 손실을 기록해도 그 손실이 직원이나 투자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업으로선 손실이 났을 때 그 손실을 보전할 유보금도 쌓아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과급 관련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얼마 전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노사가 성과급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때 “보상에만 집착하면 미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며 “(일부 직원이) 1700%의 성과급에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3000%, 5000%까지 늘어나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최 회장은 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1등 기업으로 올라섰고 과거 2등의 한을 어느 정도 풀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여전히 불안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근래 기업의 경영 환경은 가뜩이나 악재 투성이다. 그나마 그간 수익을 내며 우리 경제를 살려온 주력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당장 미국의 관세 폭탄 앞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업체 간 죽기 살기 식 각축전 속에 미국의 관세 수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자동차의 대미 품목 관세율은 25%로 경쟁국 일본·유럽연합(EU)에 비해 불리하다. 일본·EU은 이미 당초 약속대로 15%를 부과받고 있다. 이들과 동일한 관세율 15%를 적용키로 한 한미 정부 간 당초 협상 결과의 시행 시기가 두 나라와 달리 오리무중이다. 협상 타결 후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관련 감감 무소식이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더욱 맥을 못 춘다. 과잉공급, 소비위축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철강은 대미 품목 관세율 50%에 휘청거린다.
기업 입장에선 이런 때일수록 전쟁터에서 싸울 실탄을 비축하는 게 절실하다.
기업을 옥죄는 입법도 쏟아졌다. 경영 투명성 제고, 균형 잡힌 노사관계 구축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 잇단 상법·노동법 개정 등으로 주주와 노조의 파워가 더 강해졌다. 이들을 상대해야 할 회사로선 버거울 수밖에 없다.
원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집권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법인세 인상,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주 4.5일제 도입) 등도 추진 중이다. 그 취지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모두 기업의 수익을 줄이는 정책인 건 분명하다. 이에 따른 성과급 축소도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노사 간 공멸을 막기 위해 서로 자중하고 절제해야 할 시점이다. 적어도 황금알을 낳지는 않더라도 섣부른 판단으로 거위의 배를 가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