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마음껏 뛰놀 수 있어야 경제가 산다

당정, 재계 반대한 상법-노봉법 일사천리 기업 氣살리려면 거미줄 규제부터 없애야

2025-09-18     정인홍 기자
           정인홍 금융부장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 등으로 대기업의 경우 적게는 수천개, 많게는 수만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과 일일이 노사협의를 해야 한다. 이는 기업과 대한민국을 쟁의와 투쟁의 장으로 내모는 동시에 기업운영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관료 출신 한 지인이 재계 분위기를 전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그는 노봉법 통과 이후 '우리도 이 참에 노조를 만들자'며 서로 앞다퉈 노조 설립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쟁의를 위한 노조 설립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좀 더 세게 말하면 기업이 수많은 협력 및 하청업체들과 일일이 노사협의를 하다보면 회사가 신규 투자, 인수·합병(M&A) 등 회사의 성장과 직결된 중요한 경영상 판단을 적기에 할 수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곳곳에서 노동쟁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수많은 새 노조가 생겨 노사협의에 치이다 보면 기업 경영 여건은 날로 악화될 게 뻔하다.

지금 기업은 죽을 맛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글로벌 통제력을 쥐려한다. 한 때 잘 진행하는 듯 보였던 한미간 관세협상은 양측간 투자 방식과 조건 등의 '눈높이'가 달라 언제 최종 타결될 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에 이어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서도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연간 150억달러 규모의 대미 반도체 수출에서 25% 관세만 적용된다고 해도 약 5조원대 이상의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글로벌 반도체 최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게다가 의약품도 고율의 관세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수출 쌍끌이 '자동차'와 '반도체'가 타격을 입으면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저돌적인 직격으로 일단 상대의 혼부터 빼놓고, 이후 상대의 패를 봐가면서 유화책과 강경책을 번갈아 내놓으면서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손해를 감수하며 협상에 임할 수는 없다. 아무리 관세 후속 협상이 장기화돼도 트럼프 대통령의 '흔들기식' 협상 스타일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우리의 국익과 기업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적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친기업 정책기조를 표방했다. 하지만 정작 실제 행동은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기업죽이기 법안'이라며 극구 반대한 상법개정안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등이 골자다. 여당은 내친김에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개정도 추진중이다.

한 손으로 악수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뺨을 때리는 격이다. 이래놓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선 우리 기업의 대대적인 투자를 독려했다. 필요할 땐 손을 내밀고, 정작 기업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외면한다. 기업 경영과 직결된 중요한 법안들은 원내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돌격대식으로 밀어붙이기 일쑤다. 이러는 사이 우리의 최대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 경제가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22년 만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를 넘어설 것이란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여당은 뒤늦게 배임제 폐지 또는 완화 등을 포함한 기업인 경제형벌 개선 방안을 이달 말까지 내놓겠다고 한다. 정부도 관련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만시지탄이나 그나마 다행이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을 옥죄는 각종 거미줄 규제부터 걷어내 한껏 움츠러든 기업의 기(氣)를 살려줘야 한다. 정부 여당은 우선 노봉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 이전까지 재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부터 만들기를 당부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