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코앞 사장 사직서 제출…한수원 '혹독한 가을' 예고편?

내달 13일 국감 개시 앞두고 황 사장 돌연 사표 제출 배경에 의문ㆍ구설 "여권 '적폐 인사' 비판·압박 결과"…원전 정책 당국자 '꼬리 자르기' 해석도 사표 수리되면 '기관장 없는 국감'...WEC '불공정 계약' 등 국감 쟁점될 듯 원전산업 정책, 정부 조직 개편 따라 산업부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 신규 원전 2기·SMR 1기 도입 불투명…한수원 노조, 대통령실 앞서 시위

2025-09-18     홍지현 기자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8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다음달 13일 개시될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돌연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022년 8월 취임한 황 사장은 지난달 21일 3년 공식 임기를 마쳤다.

18일 정ㆍ관계 및 업계 등에 따르면 공기업 사장은 임기 종료와 동시 물러나거나 후임자 임명 때까지 직무를 유지한다.

그러나 황 사장은 임기가 지나서도 자리를 지키다 갑자기 사표를 낸 것으로 전날 알려졌다. 황 사장의 사직서가 수리될 경우 한수원은 올해 국감을 기관장 없이 받게 될 전망이다. 

이에 그 배경을 놓고 의문과 함께 각종 구설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 정책을 앞장서 추진한 황 사장이 여권의 '적폐 인사' 등 비판과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결과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다른 한편으론 원전 정책의 과오가 국감의 도마에 오르기 전  윤석열 정부 원전 정책 당국자들이 황 사장의 사퇴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수원은 올해 국감에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WEC)와 '불공정 계약' 등 강도 높은 감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윤석열 정부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 수주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1월 WEC와 체결한 협정의 일부 조항이 불리하다고 지적됐다는 게 그 이유로 꼽혔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는 원전을 수출할 때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원)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WEC에 제공하고1억7500만 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모든 차세대 원전을 독자적으로 수출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도 받아야 한다. 이는 WEC가 기술 검증 절차를 통해 한국의 차세대 원전 수주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윤석열 정부와 WEC간 불공정 계약 정황은 이뿐 만이 아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월 한전과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을 앞두고 지식재산권 분쟁을 벌였던 WEC와 합의한 내용 중 '유효기간' 항목에서 "발효일로부터 50년간 효력을 유지"한다는 게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쌍방이 종료하기로 합의하지 않는 한 5년씩 자동 연장"이라는 내용도 반영했다.

이는 WEC가 계약 종료를 동의하지 않으면 무한정 효력이 유지되는 사실상 '종신 계약'으로 해석됐다.

보다 구체적인 협정 내용은 비밀 유지 약정에 따라 알려지지 않았다.

한수원의 기능 약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 14일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다음달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소관이었던 원전산업 및 에너지 정책이 환경부로 이관된다. 산업부는 원전 수출만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 육성보다는 규제에 방점이 찍힌 환경부 중심으로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다음달 출범하면 원전산업 생태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담긴 대형원전 2기와 SMR 1기를 신규 건설하겠다는 원전 활용 계획 또한  최근 백지화 또는 대폭 수정 조짐을 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 건설 기간 및 부지 확보난 등을 들어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으로 사실상 내정된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 인식을 나타낸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엔 다소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노보셀로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전날 전남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에서 열린 '나주 글로벌 에너지포럼 2025' 기조강연을 통해 "(한국은) 밀집된 대형 원전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분산화된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재명 정부에서 한수원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정부의 원전 정책 변경으로 기존에 계획된 신규 원전 건설이 백지화할 경우 최소 15조원의 사업비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11차 전기본에 따르면 오는 2038년까지 우리나라에 2.8GW(기가와트) 설비 용량의 원전 2기와 0.7GW 규모의 SMR 1기가 지어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을 비롯한 복수의 기관들에 따르면 원전 1기와 SMR 1기 건설에 각각 6조 원과 3조 원이 투입된다. 즉 이들 건설비만 총 15조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유지·보수·정비에 쓰이는 후속 비용과 함께 투자금회수지연과 자금조달 부담까지 가중되면 그 비용은 더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탈원전 본격화 시 투자금 회수 지연과 자금 조달 부담 가중 등으로 원전업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한수원 노조가 나섰다. 한수원 노조는 전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강창호 노조위원장과 전국본부위원장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는 원자력 정책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산업통상부로 나눠 맡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의해 한수원의 힘이 약소해질 수 있다는 한수원 조직 내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한수원 노조는"실제 원전 건설은 8년이면 가능하다"며 "“기후위기 대응은 필요하지만 원자력 없는 기후·에너지 정책은 허구"라고 비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설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라서 이에 대해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어 황 사장의 사의 표명에 관해서도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황 사장의 사직서 처리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과 이재명 대통령 수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이날이나 늦어도 이번 주 중으로 사직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