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판교”…파업 잇따른 IT업계의 속사정은?

네오플·네이버·한컴, 임금·성과급 이견으로 파업 및 갈등 지속 높은 노동 강도·불투명한 운영·팬데믹 후 인식 변화 등 충돌

2025-08-13     손예지 기자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오플분회가 11일 경기 성남시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 성남 판교 곳곳에서 노사갈등이 이어지며 IT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강경한 움직임을 자제하던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과 보상체계 개선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13일 IT(정보기술)업계에 따르면 넥슨 자회사인 네오플 노조는 지난 6월 말부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중국에서 흥행하며 사상 최대 매출인 1조3783억원을 달성했지만, 개발 인력의 성과급이 전년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영업이익 9824억원의 4%를 성과분배(PS) 형태로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GI·KI 성과급, 마일스톤 인센티브, 스팟 보너스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PS 제도 도입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맞서는 중이다.

네이버도 산하 6개 법인의 임금 및 단체협약이 결렬되며 파업 위기에 놓였다. 서비스 운영, 인프라, 고객센터 등을 담당하는 네이버I&S, 그린웹서비스, 컴파트너스 등 핵심 업무 수행 법인들이 사내하청 구조로 분리돼 임금과 복지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특별인센티브를 네이버와 동일한 수준의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복지 격차를 해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도 올해 처음 시행된 성과보상금 제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지며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 측은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연봉 인상 방식을 폐지하고, 분기별 우수성과자(MVP)를 선정해 차등 지급하는 체계로 전환했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실제 수혜 대상이 전체 직원의 5%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IT업계는 다른 산업에 비해 노조 성향이 비교적 온건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설립 역사가 짧은 기업이 많고 이직이 빈번해, 단체행동보다 개별 협상 중심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열악한 근로 여건과 불투명한 보상 체계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노조 설립과 가입률이 빠르게 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어섰으며, 주요 대형 게임사인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에도 모두 노조가 설립된 상태다.

실제로 IT업계의 높은 노동 강도는 꾸준히 지적돼 온 구조적 문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게임 출시 직전 마감에 맞추기 위해 야근과 추가근무, 주말근무가 이어지는 이른바 ‘크런치’ 기간의 주 최대 근로시간은 56.1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4.5시간 증가한 수치로, 과도한 집중근무를 야기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과평가와 보상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것도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IT·게임산업 특징과 노사관계 과제’ 보고서는 “IT·게임업체 개발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10%에도 미치지 않아 조직 개편이 잦고 의사결정 구조도 폐쇄적”이라며 “특히 프로젝트 종료 후 대기발령·전환배치·권고사직이 일상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의 환경 변화도 직원들의 노조 가입 확산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팬데믹 특수로 높은 성과를 거두며 넥슨을 비롯한 다수 기업이 연봉을 대폭 인상하고 인재 확보에 주력했지만, 종식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눈높이가 올라간 직원들과 비용을 줄이려는 회사 간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무환경 변화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 확산과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근무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엔데믹 이후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회사와 원격근무를 선호하는 직원 간 입장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IT업계 노조 파업 사태는 업계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직원들이 역대급 실적에 기여한 만큼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팬데믹 특수가 끝나고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회사는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