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낼 수 있나" 청년층 불신에…연금개혁 공약 경쟁 나선 대선 주자들

이재명 "군 크레딧 12개월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 김문수 "자동조정장치 도입·위원회 청년층 비율 ↑" 개혁 논의해야 할 연금특위, 조기 대선으로 동력 상실

2025-05-08     손예지 기자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법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청년 세대들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를 의식한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추가 개혁 공약을 내놓으며 '청년층 표심 잡기'에 나섰다.

◆대학생 10명 중 9명, 연금개혁안에 '부정적'

8일 연금개혁 총학생회 공동포럼이 전국 대학생 약 1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6%가 연금개혁안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대학생 10명 중 9명이 개혁안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또한 연금기금 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0%에 달했고, 39.5%는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개혁 대응을 위한 대학생 설문조사. 자료=총학생회 공동포럼

이처럼 청년들의 불만이 커진 배경에는 '더 내고 덜 받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모수개정안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험료는 향후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오르는 반면, 소득대체율은 즉시 인상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청년층이 기성세대보다 오랜 기간 인상된 보험료를 부담하게 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가량 늦춰졌다는 점도 청년층의 불안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25세인 청년은 40년 뒤인 2065년부터 연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현행 개혁안대로라면 연금 기금은 그 전에 이미 소진된 상태다.

이 때문에 보험료율 추가 인상이나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뒤따르지 않는 한, 지금의 2030 세대가 연금을 받을 시점에 실제 수령이 가능할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軍 크레딧 확대·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청년층 표심' 공략 나선 대권주자들

이에 대선 주자들은 기존 개혁안에 문제를 제기하며,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을 속속 내놓는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년의 국민연금 생애 첫 보험료는 국가가 지원하고, 군복무 크레딧은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3월 국민연금 개혁안 협의 과정에서 군복무 크레딧을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국민의힘과의 협상 끝에 12개월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약한 것으로 알려진 20∼30대 남성층 표심을 염두에 둔 전략적 공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연금 개혁 논의에 청년층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지난달 19일 열린 1차 경선 토론에서 "연금개혁 때문에 청년들이 더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며 "(집권 시) 국민연금 2차 개혁을 바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함께 연금개혁위원회의 청년 참여 비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자동조정장치란 인구구조나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연금액, 수급 연령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기대 수명이 늘어나거나 국민연금 가입자가 줄어들게 될 경우,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서 자동으로 보험료율이 올라가거나 소득대체율이 낮아지게 된다.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는 아직 연금 개혁과 관련한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낼 당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해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현재의 국민연금과 별도인 새로운 연금을 만들어 신·구연금의 재정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신연금은 기대 수익비를 1로 낮추는 대신, '낸 만큼은 받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금특위 논의, 조기 대선 영향으로 '지지부진'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선 주자들이 연금 개혁을 둘러싼 공약 경쟁에 나서는 사이, 정작 제도 개편의 핵심 논의기구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뚜렷한 성과 없이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연금개혁특위는 지난달 8일 출범했지만, 현재까지 단 두 차례의 회의만 열렸다. 산하에 구성 예정인 민간자문위원회나 공론화위원회도 아직 출범하지 못한 상태다. 재원 고갈·기금 운용 수익률 문제 등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데에는 대선 국면의 영향이 크다. 선거가 임박하면서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다. 

여기에 대선 결과에 따라 대통령뿐 아니라 국정 과제의 방향 자체가 전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특위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의 논의가 정권 교체 이후 백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특위 내부에서도 적극적인 추진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기 정부 출범 이후에는 특위 위원 구성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어, 본격적인 제도 개편 논의는 대선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