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주는 뒷전, '혹세무민' 전략 멈춰야

2025-04-25     신동혁 기자

 

한때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에 달했다. 획기적인 혈액 검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기극을 펼쳤던 기업이다.

'제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우던 테라노스의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1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는데, 뻔뻔하게도 지난 2월 항소 법원에 재심리를 요청했다.

다행히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지만, 피 몇 방울로 250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그녀의 모습은 피해자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악몽처럼 남아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허위 정보로 투자자들을 홀린 후 상폐 수순을 밟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으며 이러한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혹세무민에 성공한 모 기업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 가능성을 부풀려 투자금을 끌어모아 '공룡 기업'이 됐다. 보도자료를 들어다보면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하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옥석 가리기 효과가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일부 기업에 투자금이 몰리면 유망한 기업들이 빛을 발하지 못해 악순환은 지속된다.

문득 소설가 윤후명의 「귤」이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작중 화자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당시에 귤은 몹시 귀한 과일이었다.

여섯 살 무렵의 화자는 강릉의 어느 바닷가에서 귤이 파도에 떠밀려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해상에 정박한 외국군 함정으로부터 버려지는 것들인데 운이 좋아야 하루에 두어 개 뿐이었다.

부도덕한 기업과 한 배를 탄 투자자들은 모래톱에서 온종일 귤을 기다리는 전쟁통의 아이들 같다. 늘 운과 동행해야 하며, 모든 불확실성을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바이오 분야는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 섹터에 속하고 인간은 누구나 운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간과하는 것 같다. 

물론 진정성 있는 모든 기업을 개척자와 사기꾼이라는 극단적인 잣대로 구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찬가지로 책임감을 가지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경영자의 태도 역시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