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국민연금 개혁' 청년 분노에 올라탄 與 잠룡들
여권 대선주자들 “재의요구권 행사해야”…청년층 표심 잡기 본격화 여야 3040 의원들도 반기…청년층 불만 고조에 '세대갈등' 전면 부상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여권의 대권 주자들이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금 개혁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거센 가운데 여권의 3040 의원들이 반기를 들자 이에 대권주자들까지 속속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여권 대권 주자들간, 또는 당 지도부와 3040 세력 사이가 갈라질 조짐이다.
특히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뒤 탈당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포함 범 여권의 연금개혁안 반대전선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권 대권 주자들은 이번 연금 개혁안에 대한 반대입장과 관련 각자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들이 뒷북을 치는 것은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조기 대선에 대비해 2030세대의 불만 심리를 자신의 표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또 여권 분열을 자초하고 당의 이념적 정체성 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대표, 한동훈 전 대표와 연금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길 희망한다"며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준석 의원은 "젊은 세대는 당장 내년부터 받아 보게 될 국민연금 인상 청구서에 낙담하고 분개하고 있다"며 "비겁한 야합에 맞설 용기 있는 정치인 간의 연대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3인은 국민의힘 당 내부에서 차기 대선 주자들로 거론되는 인물들로, 이들 모두 국민연금법 개혁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바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SNS에서 "청년 세대에 독박 씌우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이대로 확정지어서는 안 된다"며 "거부권 행사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국회를 통과한 모수개혁안은 땜질하기로 담합한 것일 뿐"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역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연금개악법'이라고 표현하며, 거부권을 행사한 후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권 잠룡들이 일제히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청년층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일 통과된 연금개혁안은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각각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험료율은 2033년까지 매년 0.5%씩 8년간 점진적으로 오르지만, 소득대체율은 2026년부터 곧바로 적용된다.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게 된 반면, 50대 이상은 혜택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를 두고 청년층에서는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젊은층 표심' 얻기에 주력해오던 대선주자들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표결에 반대표를 던졌던 여야 3040 의원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김용태·김재섭·우재준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장철민·전용기 의원, 개혁신당 이주영·천하람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연금개혁안은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구성에서 3040 세대 의원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높이고, 위원 수도 현재 13명에서 20명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또한 연금기금의 고갈 속도를 늦추기 위해 내년부터 최소 1조원 규모의 국고를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 같은 모수개혁안이 당의 정체성과도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득대체율을 현행보다 더 올리는 '43%' 안은 미래세대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 '재정 안정성'을 강조해왔던 여당의 기조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안 표결에서 국민의힘 소속 반대·기권 의원 수는 56명에 달하는 등 당내 이견도 뚜렷했다. 또한 국민의힘 연금특위 위원들이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내부 반발이 커지자 당 지도부에서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금 당장 모수개혁을 하지 않으면 2029년부터 연금기금 총액이 감소하게 돼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연금특위를 통해 청년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돼서 구조개혁에 반영되도록 지도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권 주자들의 연금 개혁안 반대론을 싸잡아 비판했다.
홍 시장은 "모처럼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는데, 청년들이 반대한다고 덩달아 반대하면서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모수개혁도 오랜 진통 끝에 나온 것"이라며 "그걸 받아들이고 그다음 단계로 구조개혁을 촉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