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생' 손 놓고 '민주주의' 외치는 국회

2024-12-20     손예지 기자
경제부 손예지 기자

사상 초유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 국회가 얼어붙으면서 에너지 법안 처리에도 제동이 걸렸다.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부수는 등 충격적인 장면들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역시 탄핵안과 내란 특검법 등을 연이어 발의하며 여당과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이후 두 번째로 발의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가결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히 탄핵 공방에 쏠려 있는 모양새다. 

사태 수습 등을 위해 매일같이 열리는 국방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와는 달리, 산업·에너지 관련 정책들을 소관하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주간의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산자위는 지난 9일 열릴 예정이었던 법안 소위원회와 전체회의가 취소된 이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고, 18일 전체회의가 진행됐지만 여야 위원들은 법안 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의 국회 상황을 두고 언성을 높였다. 

이처럼 산자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처리가 시급한 에너지 관련 법안들의 연내 국회 통과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반도체단지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된 '전력망특별법'과 원자력발전소 가동 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등에 대한 지원방안을 담은 '고준위특별법' 등은 현재 법안소위에 그대로 멈춰 있는 상황이다.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중장기 전력수급방향 등을 결정하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일각에서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연내 처리를 목표로 실무안 공개와 공청회 개최를 거쳐 국회 보고만을 앞둔 상태였지만,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등을 담고 있어 '탈원전'을 외치던 야당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 '원전 생태계 복원'을 주요 에너지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정권 교체 변수까지 대두되면서 현 정부에서 추진 예정이던 각종 에너지정책들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앞서 국회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며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을 입모아 외쳤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국민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국민의 삶을 챙기지 않고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지 않으면 전력난이 현실이 되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가 지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매서운 속도로 'K-반도체'를 추격 중인 중국과 미국, 그리고 2030년부터 차례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등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 닥친 과제다. 

이제 탄핵 심판의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됐다. 올해가 2주 가량 남은 지금, 국회는 정쟁과 탄핵 공방에서 벗어나 시급한 민생 과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