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확정한다더니"...탄핵 정국에 가로 막힌 '11차 전기본'
산자중기위, 예정된 전체회의 일정 없어...사실상 '개점휴업' 국회 보고 절차만 앞두고 있지만 연내 확정 여부는 '미지수' 尹 탄핵정국 속 야권 일각에서는 '전면 백지화' 주장도 나와 전문가 "확정 늦어질수록 전력·송배전망 사업도 미뤄질 것"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논란 등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현 정부의 주요 에너지정책 중 하나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11차 전기본')'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일각에서는 이를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11차 전기본의 연내 확정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는 중이다.
전기본은 국가 중장기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해 전기사업법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라 2년 주기로 수립되며 향후 15년 계획기간 전력수급의 기본방향과 장기전망, 발전설비 계획, 전력수요 관리 등의 내용을 담는다.
11차 전기본의 계획 기간은 2024~2038년이다. 대체로 계획은 첫 적용 시점 이전에 마련돼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계획기간 첫 해가 다 지나가는데 아직까지 계획의 수립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11차 계획은 건너 뛰고 아예 12차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정치권과 국회 등에 따르면, 11차 전기본과 관련된 논의가 대부분 '올스톱'된 상태다. 전기본을 소관하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전기본 등과 관련해) 전체 회의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산자중기위는 지난 9일 법안 소위원회와 전체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전기본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전기사업법 등에 따라 2년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하는 계획으로,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 기본 방향을 담고 있다. ▲ 전력수급 기본방향·장기 전망 ▲ 발전설비계획 및 주요 송·변전설비 관련 사항 ▲ 전력수요 관리에 관련한 사항 등을 골자로 하기 때문에 국내 산업계와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원전 사업과 전력 계통 진행 방향 등 주요 에너지사업들이 전기본이 제시한 방향에 맞춰 수립·시행되기 때문이다.
2024년에서 2038년까지의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을 다루는 이번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부족한 전력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원전 최대 3기와 SMR(소형모듈원자로)를 건설하는 계획 등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른 2038년 전원별 발전 비중은 ▲ 원전 35.6% ▲ 신재생에너지 32.9% ▲ LNG(액화석유가스) 11.1% ▲ 석탄 10.3% ▲ 수소·암모니아 5.5% ▲ 기타 4.6% 등이다.
현재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최종 확정 단계까지 국회 보고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지만, 언제쯤 보고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월 브리핑을 열고 "전력 수요에 따른 적절한 대응과 신속한 전략망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연내 (11차 전기본을) 확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11차 전기본이 당장 올해인 2024년부터의 전력수급안 등을 담고 있는 만큼, 조속히 확정해 관련 계획들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 등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일각에서는 11차 전기본이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야당이 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신규 원전 건설 등에 부정적인 데다가, 실무안에 포함된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 역시 RE100(신재생에너지 100%) 등의 국제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전 확대 등은 현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인 만큼,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 등으로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야당은 지속해서 11차 전기본안에 대한 불만을 표해 왔다.
지난 6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차 전기본안에 대해 "신규 원전을 4기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당의 김성한 의원 역시 전기본 수립 또는 변경 시 국회 동의 절차를 의무화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력 산업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 등을 위해서는 현 정치 상황과 별개로 11차 전기본이 조속히 확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1차 전기본이 연내 통과하지 못할 경우) 전기사업법, 녹색성장법, 전원개발촉진법 등 법적인 요건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본 확정이 늦어지게 되면 지금까지 진행해 온 전력 사업과 송배전망 사업을 모두 뒤로 미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에너지 정책에 투영해서 결정하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