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雜說] 거울 속 당신은 왼손으로 빗질을 한다

2024-09-06     김형규 기자
김형규 생활경제부장 겸 편집부국장

얼마 전 지인들과 골프 라운드를 다녀왔다. 너무 더웠던 탓이었을까 스코어는 세 자리를 그리고 있었다. 라운드 후 식사를 하면서 다들 늘 하는 똑같은 말을 던졌다. “연습 좀 해야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한마디를 했다. “이제 골프 그만둬야지. 왼손잡이는 연습하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불편하니 다른 운동을 찾아봐야겠어.” 그렇다. 필자는 왼손잡이다.

실제로 골프 한 종목에 한정해서 보면 왼손잡이는 연습장에 타석이 없거나 있어도 맨 구석에 한 타석 정도 있다. 또한 골프클럽도 남자는 최소 1개월, 여자는 3개월이 지나야 주문한 물품을 수령할 수 있다.

비단 골프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왼손잡이로 사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만 적응해 갈 뿐이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왼손잡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오른손으로 밥 먹어라’, ‘오른손으로 글 써라는 잔소리는 요즘은 그냥 왼손을 쓰게 둬서 그나마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왼손잡이는 초등학교 때 영문도 모른 채 가위질이 서툰 사람이 돼야 하고, 대학에 가서는 오른쪽 팔걸이 책상과 씨름을 해야 한다. 군대에 가서는 오른쪽 제식에 맞춰야 하고, 오른손으로 총을 쏘도록 강요받는다. 왼손으로 총을 쏘면 탄피받이가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또 지하철에는 오른쪽에 있는 단말기에 몸을 비틀어 카드를 찍고, 밥 먹을 때 옆사람과 본의 아니게 썸을 타야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따를 때도 예의 없는 놈이 되기 일쑤이고, 냉장고 문은 오른손잡이만 열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한때 많은 도구가 오른손잡이에 맞춰 만들어지다 보니 한국전력에서는 2019년까지 전기·전자 부문 직원 채용에 오른손잡이로 제한하기도 했다.

왼손잡이가 천대받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단어부터 오른쪽의 오른옳다’, ‘바르다의 의미이고, 왼쪽의 그릇되다’, ‘틀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던 옛말 외다가 어원이다. 영어도 오른쪽은 옳은의 뜻을 가지고 있는 ‘Right’, 왼쪽은 버려진을 뜻을 담고 있는 ‘Left’이다. 이는 프랑스어 ‘Droit’‘Gauche’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왼손잡이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일 뿐이다.

지난 1976년 국제왼손잡이협회에서는 매년 813일을 국제 왼손잡이의 날로 지정해 왼손잡이의 인권 신장과 인식 변화, 왼손 사용에 대한 편견 개선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활동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한국왼손잡이협회가 창립됐고, 이듬해에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왼손에만 흰 장갑을 낀 채 왼손잡이의 날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왼손잡이협회는 홈페이지 조차 닫혀있는 상태다.

4년 전인 21대 총선에서 당시 미래한국당은 함께하는 세상!-왼손잡이도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공약을 내놓았지만 그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돼버렸다.

세상의 모든 오른손잡이용에 길든 왼손잡이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왼손잡이들을 이해하고 조금씩 변해가길 바랄 뿐이다

당신도 거울을 보면 왼손잡이 당신이 보이질 않는가.